<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넵’ 병에 걸린 이들을 위한 위로

최근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 유빈이 신곡을 냈습니다. 제목은 ‘넵넵’. 그는 “‘네’라고 하면 눈치가 보여서 ‘넵’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라고 설명했는데요. 유빈과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후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 그날 하루 제가 참여한 대화방에서 ‘넵’을 쓴 횟수를 세어 봤습니다.

결과는 무려 17번. ‘네’라고 답한 것보다 ‘넵’이라고 쓴 횟수가 더 많았죠. 얼마 전 연예기획사를 차리고 ‘사장님’이 된 유빈조차 “저도 대표지만 회사의 베테랑 직원들에게 눈치가 보여 ‘넵’이라는 대답을 많이 하게 된다”더군요. 저 역시 여러 대화방을 둘러보니 회사 선후배들과의 대화방, 손윗사람들과의 대화방에서 유독 ‘넵’이란 표현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 괜스레 뜨끔하더군요. 결국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넵’이라는 표현은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해 듣고 있으며, 충성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 사회생활을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윤활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중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대학생이 ‘잘렸다’는 것이었죠. 그 중학생과 관계도 원만하고 성적도 오른 터라 왜 갑자기 그런 통보를 받게 됐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데요. 조심스럽게 학부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가 들은 답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주고받는 문자메시지가 딱딱해 무섭다”는 이유였죠. 그래도 선생님으로서 좀 더 위엄을 갖추기 위해 문자메시지 뒤에 ‘^^’(웃음), ‘ㅎㅎ’(하하)나 이모티콘 등 보다 친근한 표현을 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결국 스마트폰 시대가 가져온 촌극이라 할 수 있는데요. 글 자체에는 감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너 어디야^^’와 ‘너 어디야!!’는 그 뉘앙스가 확 다르죠. 숱한 이모티콘은 전화통화보다 카카오톡, 라인, 텔레그램 등을 이용한 메시지 대화가 더 편하고 익숙한 이들이 상대방에게 정확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필수품이 됐습니다.

당신의 대화창은 어떤가요? ‘ㅋㅋ’ ‘ㅎㅎ’와 같은 각종 웃음을 비롯해 ‘∼’(물결) 등을 남발하진 않나요? 직장인인 저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적잖이 그렇게 살고 있더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 이모티콘을 동원한 대화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과 동시에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니까요. 상대방의 긴 이야기에 ‘네’라고 딱딱하게 한마디 답하는 것보다 ‘넵∼!!’이라며 적극적으로 호응하면 왠지 더 기분이 좋더군요.

유빈도 ‘넵넵’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스트레스 키우다 번아웃／눈치보다 날 다 샌다／일만 하다 머리 샌다’. 그냥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