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北의 대통령 능멸은 국민 모욕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허민 전임기자

북한의 ‘근친 증오(近親憎惡)’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국민 대부분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북한 정권의 능멸에 가까운 무례와 막말에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국정 지지 여부를 떠나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 손으로 뽑은 국가원수이고 군 통수권자이자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북한의 대통령에 대한 협박은 국민을 협박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는 국가 안위와 국격 수호의 문제로 연결된다. 아카이브를 뒤져 과거의 경험과 사례를 찾아봤다.

#사례 1.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에게 막말을 한 북한을 비판했다. 2015년 7월 25일 북한이 “박근혜의 천하 못된 입을 용접해버려야 한다”고 하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그는 다음 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북한이 박 대통령에게 또 막말을 했습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급한 표현에 수치심이 들고, 글로 옮기기 힘들 정도입니다. 상대방의 국가원수를 모욕하는 것은 국민 전체를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국민도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막말에는 모욕감을 느낍니다. 북한의 그런 태도는 남북관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북한에 대한 비호감을 키울 뿐입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을 품격 없는 국가로 평가받게 만들 뿐입니다. 북한이 자신의 지도자에 대해서는 최고 존엄이라며 존중해주기를 요구하는 것과도 모순됩니다.’

#사례 2. 김영삼(YS) 정부 때 북한의 ‘서울 불바다’ 협박 사건이 있었다. 19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실무 접촉 때 북측 대표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국장(차관급)은 비공개회의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격노한 YS는 육성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도록 했고, 파문이 일었다. 정부는 북한과 일체의 교류를 끊고 특사 교환 추진 중단을 밝힌 뒤 군사훈련을 강화하며 고강도 대북 압박을 실행에 옮겼다. 결국, 김일성 북한 주석은 한 달쯤 뒤인 그해 4월 16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해명했고, 박영수는 곧바로 경질됐다.

문 대통령의 5년 전 글은 오늘 상황을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막상 대통령이 된 후 북한의 노골적인 인신공격적 행태에 오래 침묵해 왔던 그는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교류 협력을 강조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비난하자 비로소 “매우 실망스럽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국정 최고책임자이자 군 통수권자의 대응이 이 말 한마디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북에 대해 “도가 지나쳤다”면서도 “인내하겠다”고 한 건 관용과 자제라기보다는 무기력증에 가깝다.

북한은 한국의 좌파 진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본다 하더라도 ‘정상국가’라 할 수 없다. 더구나 17일 북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6년 전 ‘서울 불바다론’을 다시 꺼내 들고 대한민국을 협박했다. 따라서 지금 문 대통령에게는 사례 1의 인식 아래 사례 2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북 정책의 방향도, 내용도, 사람도 모두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 온 국민이 모욕당하는 걸 알면서도 뜨뜻미지근하게 대처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건 전략적이지도, 문제 해결적이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