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명배우… 메릴 스트립의 아우라 넘치는 삶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퀸 메릴 / 에린 칼슨 지음 / 홍정아 옮김 / 현암사

‘할리우드에서 가장 과대 평가된 여배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벽 4시에 날린 트위트다. 2017년 1월의 그날, 트럼프 대통령이 잔뜩 열 받아 ‘과대평가된 여배우’라는 ‘막말’을 토하게 한 장본인은 배우 메릴 스트립이다.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라는 수식이 부끄럽지 않은 그는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 달리 여성·정치·환경 등 사회적 이슈에 할 말 하는 ‘스피커’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트위트를 날린 그 전날에도 그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뒤 “할리우드에서 외국인들을 쫓아낸다면, 우리는 미식축구, 종합격투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라며 트럼프의 반 이민자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해 SNS를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트럼프의 분풀이 트위트는 메릴에 대한 평가를 깎아내리기는커녕 그의 아우라에 빛나는 밝기와 뜨거운 열기를 더했을 뿐이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담당 기자가 쓴 메릴 전기 ‘퀸 메릴’은 이렇게 배우이자 소신 넘치는 유명인, 그리고 자기 삶을 잘 살아낸 책임 있는 개인으로 아우라 넘치는 메릴의 이야기다. 배우에 대한 재능을 발견한 6세에서 시작해, 1976년 27세 무명의 메릴이 ‘킹콩’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진짜 못생겼네. 뭘 이런 걸 데려왔어?”라는 제작자의 불평을 듣게 되는 잔인한 문턱을 넘어 그녀가 어떻게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넓혀가며 성장해 나갔는지 들려준다.

특히 여배우는 무조건 젊고 예뻐야 했던 시절, 중년의 여배우가 자기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결과적으로 후배 여배우들을 위한 길을 열어내는 과정은 흥미롭다. ‘펀치 라인’에서 톰 행크스의 연인 역할이었던 샐리 필드가 6년 뒤 ‘포레스트 검프’에선 겨우 47세에 행크스의 엄마 역할을 맡아야 했던 시절, 메릴은 이에 저항하며 ‘대배우 스트립’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44세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을 맡아 여성에게 결혼이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했다’ 같은 동화 속 결말이 아니라는, 당시엔 누구도 내놓고 말하지 않던 진실을 드러냈고, 예순 가까운 나이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 역을 맡아 현실적이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저자에 따르면 “메릴은 ‘디어 헌터’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여자 친구 역할을 맡았지만… 결국 대배우 드니로도 그녀의 화려하고 장엄한 이력 앞에서는 한 줄의 각주에 지나지 않았고, 오늘날 여왕의 발아래 꽃을 놓아주는 사람일 뿐이다”(374쪽)고 풀어낸다.

책은 배우로서의 성장기와 함께 네 자녀의 엄마인 메릴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상당 부분 들려준다. 메릴의 개인사와 맞물려 나오는 당대 영화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읽는 재미도 더한다. 다만 약점보다는 강점에, 실패보다는 실패를 딛고 일어난 성공에 초점이 가 있는 책이다. 제목대로 ‘퀸 메릴’이다. 416쪽, 2만 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