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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0년 10월 08일(木)
시간이 삭힌 감칠맛…밥상 위 ‘千의 얼굴’에 콩깍지 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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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부요리 전문점인 ‘두림’에서 점심시간에 맛볼 수 있는 청국장. 콩을 삶아 볏짚에 넣고 아랫목에서 띄우면 며칠 만에 청국장이 된다.

■ 한국인과 콩

中서도 칭찬한 고구려 장맛
농경민족의 든든한 밑반찬

냉이·다슬기·미꾸라지 등
된장 풀어 끓여내면 일품

두부 만들고 콩나물로 변신
볶은뒤 갈아서 콩국수로도

간장은 된장 부산물이지만
日선 과자로 나올 만큼 즐겨


바야흐로 콩 수확철이다. 지금부터는 거둬들인 콩깍지를 까며 단백질 여유로운 겨울을 준비한다. 한국인의 오랜 일상이다. 대표적 두장(豆醬)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은 콩으로 메주를 쑤고 된장과 간장을 담가 맛과 에너지를 얻어왔다.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겠지만 한국인의 식탁에 콩이 들어가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당장 오늘 받아든 밥상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콩밥에 된장찌개, 콩자반, 콩나물, 두부 등이 있지 않았을까. 밥에 청국장을 얹고 숙주나 콩나물을 싹싹 비벼 먹었다면 거의 콩이 일상 끼니를 책임진 셈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간장으로 양념하고 된장을 넣어 버무린 음식이라도 있었을 게다. 장조림, 생선조림, 나물무침이나 된장박이 등이 죄다 콩이 들어간 요리다. 뭔가 기름을 두르고 굽거나 튀긴 반찬이 있었다면 대두유를 맛봤을 확률이 높다.

“난 오늘 반찬 없이 라면(국수)을 끓여 먹었는데요”라고 반문할 경우에도 빠져나갈 수 없다. 국수에 든 유부나 라면 건더기수프 속 고기처럼 생긴 것은 모두 콩 단백질이다. 콩 없이 하루를 살긴 힘들다. 그만큼 한국인은 콩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 콩알만 한 게 어찌 그런 매력이

동아시아의 대표적 작물인 콩은 세계 3대 곡류에 들지 못한다. 쌀과 밀, 그리고 신대륙의 옥수수가 콩 대신 대표적 곡류로 이름을 올린다. 콩 자체만으로는 주식이 되지 못하는 점이 3대 곡류에 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콩가루 집안’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콩은 점성이 부족해 다른 곡물과 섞거나 물리적·화학적 변형을 가해야 한다. 메밀국수와 밀면은 각각 메밀과 밀로 국수를 뽑아낸 것이지만, 콩국수는 콩물에 말아낸 밀국수를 말한다.

대신 특유의 높은 단백질 함량과 고유의 맛으로 다양한 식재료로의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이 콩이 가진 큰 장점이다. 소화율을 높이기 위해 단백질만 추출해 두부를 만들거나 싹을 틔워 나물로 기르기도 한다. 또 볶아서 가루 낸 콩고물로 다른 음식에 맛을 더하기도 한다. 버릴 것이 없어 효율이 높다. 두부를 만들 때 두유를 짜면 콩비지가 남고, 기름을 짜고 나면 대두단백이 남는다. 콩깍지나 콩잎까지 먹는다.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콩고기’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중국과 일본 등에선 과거 사찰에서 다양한 콩고기를 만들어 먹었다. 중국과 대만, 일본 사찰의 정진요리나 홍콩의 자이루웨이(齋鹵味) 등이 그것이다.


# 몸에 좋아서 콩, 맛있어서 콩

단백질은 곧 맛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아미노산이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은 단맛을 내고 지방에는 고유의 느끼한 지방맛(oleogustus)이 있다. 단백질은 감칠맛이다. 감칠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선 육류나 조개, 생선 등 비싼 식재료를 많이 써야 했지만, 인류는 단백질을 발효해 그 맛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대 로마의 젓갈인 가룸과 메콩 강 유역의 남쁠라나 느억맘(fish sauce) 등 어장(魚醬)문화권에서도 오래전부터 발효과정을 통해 감칠맛을 얻었고, 유목민들은 낙농 유제품에서 좋은 맛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인은 식물인 콩을 소금과 함께 발효시켜 상당한 맛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된장, 즉 두장(豆醬)이다. 된장을 얻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것이 간장이다. 된장, 간장이나 액젓(어장)은 원리가 같다. 단백질을 분해시켜 맛을 내는 아미노산을 얻는 것이 장을 담그는 주된 목적이었다. 메주의 역사는 삼국사기에도 나올 정도로 무척 길다. 그 이전에도 고구려의 장이 특히 맛있다고 기록한 중국 고서(정사 삼국지)가 있다. 메주를 담그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메주콩을 불려 삶은 다음 이를 으깨야 한다. 다시 네모지게 빚어 말리는 시간을 거친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의 맛’이 깃든다. 된장을 얻기 위해서는 메주를 소금물 독에 띄워 발효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발효시킨 소금물은 간장이 되고, 메주는 꾸덕꾸덕한 된장으로 바뀐다.(된장 이름의 유래 역시 ‘되다랗다’는 뜻이다) 발효를 거친 간장과 된장에는 아미노산이 풍부해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와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은 궁핍한 농경민족의 식탁에 든든한 밑반찬이 됐다. 봄이면 된장찌개에 냉이를 넣고 여름이면 다슬기와 우렁이를, 가을엔 미꾸라지를 갈아 넣었다. 부추와 우거지, 시래기 등 밭과 들, 강·바다에서 나는 온갖 산물을 넣고 끓여도 언제나 맛이 좋았다. 영양가 든든한 찌개로 또는 국으로 거친 밥 한 끼를 먹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군대 시절을 떠올려보면 알겠지만 지금도 한식의 기본은 된장이다. 김치찌개나 고추장찌개는 된장에 입맛이 떨어질 때 차리는 대체재였을 뿐이다. 고추를 사용한 음식의 역사도 길지 않다.

된장을 급히 만든 것이 청국장이다. 콩을 삶아서 볏짚에 넣고 아랫목에서 띄운다. 그럼 며칠 후 청국장이 된다. 낫토(納豆)도 똑같은 원리다. 맛도 좋지만 몸에도 이롭다. 그냥 가지고 다니다 먹으면 꽤 영양가 높은 식량이 된다. 그래서 옛날에는 군인들이 가지고 다녔다. 조선 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제에 수시장(水시醬)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볶은 콩을 삶아 띄운 것을 말려서 필요할 때 물과 소금을 섞어 먹는다고 나온다.


# 부산물 신세, 간장의 반전

국은 기본적으로 된장국을 의미할 정도로 늘 미소(味쾌·일본 된장)를 상식하는 일본의 고서에 흥미로운 기록이 등장한다. 에도시대 정치가이며 유학자인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1717년 쓴 동아(東雅) 중 장조(醬條)에 따르면 “예전에 고려의 장인 말장(末醬)이 일본에 들어왔는데 고려 북쪽 방언인 ‘미소’로 부른다”며 미소의 유래에 대해 썼다. 만주가 원산지인 대두와 이를 이용한 두장의 전래 경로가 한반도였다는 뜻이다. 이전에도 ‘말장’에 대한 서술이 등장한 것으로 볼 때, 일본에서 최고 유행한 음식인 ‘된장과 간장’은 한반도에서 전래됐다고 볼 수 있다. 말장이란 간장을 빼고 난 마지막 장이란 뜻이다.

세계에서 간장·된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인구수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고추장, 고춧가루, 액젓 등 기타 조미료의 소비가 많은 한국에 비해 대부분 일식에선 양념으로 간장을 쓰고 끼니마다 된장국을 마시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계란프라이 전용, 생선회 전용, 메밀국수 전용 간장 등 다양한 간장이 있다.

간장에는 공법상 5가지 종류가 있다. 조선간장으로 알려진 한식간장과 양조간장, 혼합간장, 산분해간장, 효소분해간장 등이다. 국내에선 간장에 대한 명칭 논란이 한창이다. 메주나 누룩(麴菌)을 쓴 한식간장 등 발효간장 외에는 간장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 없고 산분해간장은 아예 ‘아미노산액’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간장은 생각보다 칼로리가 높다. 예전 한식 상차림에서 5첩·7첩·9첩 반상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간장 종지다. 고소한 간장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밥을 삼켰다. 간장은 애초 소스가 아닌 반찬 반열에 당당하게 끼었던 셈이다.

세종 때 한양도성 건설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간장국을 줬다는 기록이 나온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수성하던 조선군 식량 기록에 ‘쌀 1만 섬, 간장 100항아리’가 나오는데 이는 간장을 중요한 반찬이자 식량으로 여긴 것이다. 지금도 오랫동안 종갓집에서 내려오는 씨간장의 경우 1ℓ에 수천만 원이 넘는다. 고급 위스키 이상의 가격이다. 비싼 모든 재화가 그렇듯 대대로 내려온 희소성이 더해진 가치다.


# 세계인의 콩

동아시아를 제외하고 콩은 그리 인기 있는 작물이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콩을 대체할 수 있는 유단백과 고기, 생선을 주로 먹었다. 콩 특유의 비린내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콩깍지 속 알알이 박힌 콩의 생김새도 징그러워했다. 하지만 중남미에선 달랐다.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해 탄수화물은 충분했지만, 단백질은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이다. 17∼18세기가 돼서야 아시아에서 전래된 콩으로 조리한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각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디서나 쉽게 잘 자라는 콩은 소중한 식량자원이었다.

미국에서도 인기가 좋은 칠리 콘 카르네, 프리홀(frijol), 페이장(feijao), 페이주아다 등 중남미 국가별로 전통 콩요리가 있다. 아랍권에서도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훔무스가 있고, 세계 정복을 위해 강력한 군대를 유지했던 영국 해군 군량으로 쓰던 베이크드빈스를 영국인들은 지금도 아침식사로 즐겨 먹고 있다.

▲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그렇다고 해도 동북아시아의 콩 섭취에는 감히 따라갈 수 없다. 중국인들의 아침은 으레 두유 격인 더우장(豆醬)으로 시작하며, 일본인들은 콩을 삶아 발효시킨 시(시), 즉 낫토를 그대로 밥에 얹어 먹는다. 물론 두부, 두반장, 첨면장, 미소, 쇼유(醬油), 모야시(萌やし·숙주), 에다마메(깍지콩) 등도 매일같이 즐긴다. 그들도 한국인 못잖게 일상 속에 콩을 상식하며 살아왔다.

세계화 시대를 거치며 각 국가의 맛난 식재료가 날아들어 우리 식탁과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수천 년간 콩이 우리 유전자에 전해준 영양 덕분일까. 오늘도 우리 밥상에는 여전히 어떤 형태로든 콩이 있고, 그 맛도 변함없이 좋다. 늙어서 부리는 욕심을 경계하자는 노마염태호(老馬厭太乎)란 말이 있다. 원뜻은 ‘늙은 말이라고 어찌 콩을 마다할까?’다. 알알이 콩을 거두고 있는 이 풍요롭고 하늘 높은 가을에 그 말이 어째 다른 뜻으로 들린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양평동 또순이네는 된장찌개
태안 솔밭가든 가면 간장게장
두림에선 구수한 청국장 한상


◇‘발효의 미학’ 된장 양평동 또순이네 = 서울에서 된장찌개 하면 이름에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이 집이다. 봄에는 냉이나 달래, 그 이후로는 부추를 넣고 숯불에 보글보글 끓여낸다. 소고기 베이스로 진하게 우려낸 육수가 끊임없이 밥을 부른다. 몇 숟가락 얹어 밥을 비비면 구수한 된장 맛에 매료돼 얼마나 많이 먹고 있는지 잊을 정도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로47길 16. 6000원.

◇‘부산물의 승리’ 간장게장 태안 솔밭가든 = 까먹기 귀찮은 꽃게와 간장이 만나 밥도둑의 원조 격이 됐다. 짭조름한 간장에 재운 암꽃게에는 샛노란 알이 한가득 들었다. 살을 쭈욱 짜내면 부드러운 살이 솜사탕처럼 피어난다. 게딱지에 밥을 비비면 세상이 제 것이 된 기분이다. 간장게장은 태안이 잘하고 그중에서도 솔밭가든이 맛있다고 소문났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 장터로 176-5. 2만5000원(게장정식).

◇‘면이 아니라 내가 주연’ 콩국수 전주 주마본 = 콩을 즐겨 먹는 전주에서도 콩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있고 상호도 외우기 버겁지만 사람들이 어찌 알고 잘 찾아온다. 진하다 못해 늪처럼 걸쭉한 콩물에 칼국수 면을 말아내고 콩가루까지 듬뿍 얹는다. 비린내는 어디 가고 고소한 맛만 남은 콩물은 면과 함께 입속을 풍미로 가득 채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용머리로 36. 8000원.

◇‘콩의 변신’ 순두부 정원순두부 = 서소문에서 50년 가까이 순두부를 팔아온 집이다. 야들한 순두부와 고기를 넣고 한소끔 끓여낸 뚝배기는 매콤하고 고소하며 또 시원하다. 갓 지은 돌솥밥과도 어울린다. 후후 불며 떠먹고 비벼 먹는 한술 한술에 꽤 넉넉한 솥밥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언제나 긴 줄을 세우지만 금세 빠지니, 못 참고 발길을 돌리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남는 장사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11길 33. 8500원.

◇‘속성의 향기’ 두림 청국장 = 두부요리 전문점으로 손두부며 전골이 모두 맛있다. 청국장을 점심에 내는데 이 또한 구수하다. 특유의 정겨운(?) 냄새는 나지 않아 아쉽지만 깍둑 썬 무와 두부, 숟가락을 뜰 때마다 알알이 건져 나오는 청국장에 밥이 잘도 넘어간다. 비빔그릇도 필요 없이 그저 밥 위에 끼얹어 먹어도 좋다. 서울 종로구 종로7길 29-17.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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