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속썩이는 딸 때문에 여윈 아버지 어깨… 용돈 제가 책임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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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버지께

“공무원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살아오면서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 딸 아니랄까 봐 무뚝뚝함까지 고스란히 닮은 나는 아버지와 살가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아버지 월급봉투는 얄팍했고 어머니는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봉투 붙이기, 인형 눈 달기 등 각종 부업을 전전해야 했다. 우리 가족은 1년마다 손수레에 짐을 싣고 이사를 했는데 자식들에게 그게 늘 미안했던 어머니는 집 한 채 장만을 평생의 목표로 삼으셨고, 그 바람에 퇴직금으로 목돈을 마련해야 했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두셔야 했다. 10년간의 짧은 공무원 생활은 아버지에게 큰 자부심이 분명했다. 정년퇴직을 하지 못했던 게 한이 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공무원이 되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무슨 반항심이었을까.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공무원은 되지 않겠어!’라고 결심했다.

공무원이 아닌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나는 32세에 실업자가 됐다. 당시만 해도 별다른 경력 없이 나이만 찬 여자의 직장 선택권은 넓지 않았다. 부모님의 취업압박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핑계를 대며 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2008년 여름, 가장 뜨거웠던 날로 기억한다. 투덜거리며 공공도서관에 가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차도 한복판 땡볕 아래 까매진 얼굴로 목을 축이고 있는 근로자 서너 명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잠시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뜨거운 도로에서 아스팔트를 포장하는 작업 중이었으니 그야말로 화산 속 불구덩이였으리라. 눈앞의 장면에 당시 건설 일용근로자로 일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지며 눈물이 솟아올랐다. ‘어디선가 우리 아버지도 더위를 견디며 가족을 위해 저렇게 힘들게 일하고 계시겠구나.’ 무책임했던 내 모습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날 이후, 생애 처음으로 공부라는 걸 참 열심히 했다. 몇 번을 봐도 외워지지 않던 것들이 한 번을 봐도 잊히지 않았다.

1년 후,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국가공무원이 됐다. 출근 첫날, 대문을 나서는 내 손에 아버지는 말없이 쪽지 한 장을 쥐여 주셨다. 고맙다. 사랑한다. 힘내라 등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동 어린 글들이 적혀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펼쳐 본 쪽지에는 단출한 몇 개의 숫자만 적혀있었다. 아버지의 계좌번호. 용돈을 달라는 의미였다. 아버지의 그 귀여운 요구에 한참을 웃었더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적으나마 아버지에게 용돈이라는 걸 드릴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그나마 드린 용돈도 딸내미 좋아하는 옥수수와 만두 사 오느라 다 써버리긴 하시지만….

태산 같았던 아버지의 어깨가 이제는 보듬어 드려야 할 어깨가 됐고, 큰소리 대신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아진 아버지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그만큼 어른이 되었나 보다.

“아버지의 계좌에 항상 숫자들이 가득하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나의 아버지.”

딸 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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