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식빵과 술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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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밥인가, 혹은 빵으로 대신한 끼니는 밥을 먹은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세대나 처지마다 다르다. 밥, 국, 찌개, 반찬이 다 갖춰져야 밥이라고 믿는 세대에게 빵은 밥이 아니다. 그러나 빵의 맛에 흠뻑 빠진 이, 배가 부르기만 하면 뭐든 끼니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에게는 이런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 서양에서는 주식으로 먹는, 이 땅에 들어온 지 100년이 더 된 빵을 두고 이런 논쟁을 벌이는 것이 우습지만 적어도 ‘빵’이 붙은 단어들의 세력 확장을 보면 또 다른 답을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식빵은 익숙하지만 ‘食빵’은 단어의 구성도, 의미도 이상하다. 들여온 지 얼마 안 되는 외래어에 한자 한 자만 붙여 단어를 만드는 일은 드물다. 게다가 ‘먹는 빵’ 혹은 ‘먹을 빵’이란 뜻으로 풀이되는데 그렇지 않은 빵이 없으니 의미도 잘 안 들어온다. 식빵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본래 ‘주식빵’ 또는 ‘본식빵’이었다. 둘 다 한 끼를 대신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일본도 우리도 앞글자 하나를 떼어 말하다 보니 식빵이 된 것이다.

그래도 술빵은 안 된다. 효모 대신 술로 발효를 시켰다 해서 술빵이라지만 만드는 방법을 보면 결코 빵이 아니다. 빵은 오븐에 구워야 하는데 솥에 넣고 김을 올려 쪄낸 것을 빵이라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놓고 ‘찐빵’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것도 빵으로 취급되고 그 형제 ‘호빵’도 빵이라 불리니 색깔이나 만드는 방법을 두고 빵에서 퇴출시킬 상황은 아니다.

음식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부르는 말이 만들어진다. 음식이 들어오면 말도 함께 들어온다. 그래서 음식의 이름을 보면 삶과 문화가 보인다. 빵이 끼니를 대신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이 있지만, 말은 이미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식빵이 밥을 대신하고 있고 새롭게 만들어진 술빵과 찐빵은 빵이 우리 말의 일부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식빵은 물론 모든 빵도 밥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