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앤디 워홀의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마이클 잭슨, 폴 앵카, 다이애나 로스가 사인한 기타를 살펴보고 있다. 왼쪽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니코의 앨범 및 코카콜라 바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불의 초창기 작품 전시장 전경. ‘무제(갈망)’ 연작과 ‘몬스터:핑크’ 조각들은 사람의 살처럼 부드럽고 꿈틀거리는 불완전한 존재를 재현한다. 벽면에는 조각과 관련한 드로잉 6점이 걸려 있다.
■ ‘시작’ 모티브 앤디워홀·이불 展
-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
벨벳언더그라운드 음악과 함께
팝아트 등 153점 대규모 전시
드로잉 작품 보는 재미도 쏠쏠
- 이불 - 시작
부드러운 재료 ‘소프트 조각’
실험적인 퍼포먼스 영상 등
20·30대 때 초창기 작품 선봬
봄을 맞아 기지개를 켜고 있는 미술가에서 ‘시작’이라는 이름을 내건 2개의 전시가 눈길을 끈다. 미국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1928∼1987)의 ‘비기닝 서울(Beginning Seoul)’과 한국의 설치미술가 이불(1964∼)의 ‘시작(始作)’ 전. 두 작가는 활동한 시공간이 다르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으로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시장에 가서 보니, 세간의 평가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길을 열어간 두 작가의 예술 세계가 여실했다.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
워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더현대서울 알트원(ALT.1)은 복합문화공간이다. 서울 여의도에 최근 개관한 현대백화점 6층에 있다.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이 첫 전시인 셈이다. 작품 153점을 선보이는 회고전인데, 이탈리아 주요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전시는 섹션을 6개로 나눴다. 각 섹션의 벽면엔 작품 설명과 함께 워홀의 생전 발언이 새겨져 있다.
저 유명한 메릴린 먼로 초상화가 있는 1섹션에서 고개를 까닥거린 것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흘렀기 때문이다. 워홀이 프로듀싱을 맡아 앨범 재킷을 제작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들은 전시장을 흥겹게 달궜다.
먼로뿐만 아니라 리즈 테일러, 무하마드 알리 등 스타들의 초상화나 신체 일부를 그린 작품이 눈길을 끈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대중문화를 소재로 팝아트라는 장르를 개척한 워홀. 그의 영리한 선택이 현재형으로 21세기의 관객을 사로잡는다.
블라디미르 레닌, 마오쩌둥, 에드워드 케네디 등 정치인을 그린 것도 할리우드 스타를 이용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런데 소, 꽃 그림과 함께 이탈리아 베수비오산을 담은 작품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중 미술로 화제를 뿌린 것 이외에 자연과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인가.
워홀은 ‘캠벨 수프’ 시리즈 등을 통해 공산품의 이미지를 복제함으로써 자본주의 소비 행태를 풍자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런 메시지를 포착한 관객은 사전에 공부하고 온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깊게 보지 않더라도 워홀의 드로잉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는 즐거움만 누려도 좋을 듯싶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으나, 평생 드로잉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회화 작가로서의 바탕을 지켰음을 알 수 있다.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워홀의 엔터테이너 면모가 반가울 수 있겠다. 수많은 뮤지션과 교류한 흔적인 앨범 재킷, 수집품 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오는 6월 27일까지다.
◇이불-시작
‘일부 작품에 비속어 및 신체노출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와의 동반 입장을 권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불의 전시엔 이런 안내문이 있다.
이번 전시는 이불이 20대였던 1987년부터 10년 동안 발표했던 ‘소프트 조각’과 퍼포먼스 기록 영상 및 사진 작품들을 전시했다. 대학생 시절에 그린 드로잉 50여 점을 최초로 공개한다.
창작자로서는 자신의 초창기 작품을 되돌아본다는 게 꺼려지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 작품들을 꼼꼼히 재현해 기록함으로써 시대적 맥락을 제대로 고찰해보자는 미술관 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1전시실에서 만나는 작품들부터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이불의 작가 의식이 뚜렷하다. 석고처럼 딱딱하고 고정적인 재료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감각의 재료로 만든 ‘소프트 조각’의 개념이 발화한 작품들. ‘무제(갈망)’ 연작과 ‘몬스터:핑크’는 인체에서 비롯된 괴물 형상으로 기괴한 조형미를 표현했다.
천 조각 등을 재료로 활용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 이불이 예명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본명이라고 한다. 불()의 한자 뜻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가 됐으니 이름값을 한 셈이다.
2전시실은 33회에 달하는 퍼포먼스 영상을 보여준다. 검은색이 주조인 60m의 공간에서 6m짜리 화면에 비치는 각 영상은 파격적이다. 페미니즘을 바탕에 깔고 있는 퍼포먼스는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다양하게 살피게 한다. 새롭다는 찬사와 역겹다는 비난을 함께 받은 파격을 끈질기게 밀고 나간 에너지가 놀랍고도 눈물겹다. 그 에너지는 예술가의 천품에서 나오는 것이겠으나, 또한 여성을 짓누르는 억압에 맞서겠다는 절실함이기도 할 것이므로.
3전시실의 사진 기록과 드로잉 작품들은 이불의 퍼포먼스를 다른 장르로 즐길 수 있게 한다. 퍼포먼스의 기괴함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는 훨씬 편안하게 다가갈 것이다. 전시는 오는 5월 16일까지 무료로 볼 수 있다.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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