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은근한 사랑주신 아버지… 기도확장 수술이 마지막 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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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덕(1928~2014)

‘안 하면 안 되냐?’며 큰형님과 나누신 말씀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호흡하시는 것조차 힘들어 고생하시다가 기도 확장 수술을 하려고 나름 그 분야에서 소문난 병원을 찾았다. 답답한 목으로 시원한 사이다 한 캔을 전부 흘려내리시고는 곧바로 수술대에 오르셨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겨지신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으신 채 주무시기만 하셨다. 그러다가 수술의 효과로 곧 일어나시는 줄만 알았다. 곁에서 간호하시던 어머니는 퇴원해서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와 함께하실 일까지 생각하고 계셨다. 그런데 입원하시고 일주일이 채 안 돼 의사는 가족을 모두 불러 모으더니 ‘이미 돌아가신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한 가닥 희망의 끈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하자는 대로 믿고 맡겼을 뿐인데 말이다.

결국 아버지를 늦은 밤 집으로 모시는데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신 아버지의 가냘픈 숨소리조차 힘겹게만 들린다.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니 인간의 한계가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집에 오셔서 잠시 누우시고는 이내 가냘픈 숨소리마저 멈추셨다. 갑작스러운 입원과 긴박했던 일주일의 고비는 결국 아버지와 영원한 이별 과정일 뿐이었다. 늘 호랑이처럼 무섭기만 한 교장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오히려 온화하게 주무신다. 더 이상 호통도, 인자함도 없이 혼자서 먼 여행을 떠나가셨다. 맨날 윽박지르시며 괴롭히시는 것 같았지만, 정말로 많이 사랑하신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신 채로….

연속해서 대학에 떨어지고 쉽지 않은 학원 생활이 이어질 때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조용히 불러 앉히시더니 ‘나도 재수다’고 하신다. 순간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때만은 무섭고 엄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똑같은 실패 경험을 얘기하시며 위로해주시는 아버지가 더없이 든든하기만 했다. ‘다시 한 번 도전할 거지?’ 라는 말씀에 우렁차게 ‘네!’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께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볼 수도 없고, 보고 싶어도 뵐 수가 없다.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그 당시에는 외아들이고 교직에 계셨기에 군대에 안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자발적으로 참전하신 것이다. 절차를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국가유공자로 인증받아 국립호국원에 어머니와 함께 안장하시게 됐다. 이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한민국이 모셔주기로 한 것이다. 자식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교회 다니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던 아버지가 결국은 어머니에게 이끌려 교회로 발길을 옮기셨고 멀리 섬 지방으로 발령을 받으시면서 집에 오실 때마다 가정예배로 위안 삼으셨다. 언제 읽으셨는지 꽤 심오한 성경 지식을 품으셨고, 찬송가 부르기를 좋아하셨다. 우리 가족에게 지금까지도 늘 부를 수 있는 18번 찬송가를 남겨주신 아버지의 숨겨진 신앙에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 가실 때도 우리 형제자매들이 부르는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셨던 찬송가를 끝까지 들으며 떠나셨다. 마음속에 그리움 가득한 존경하는 우리 아버지. 형제자매들 속에서 막내아들에게 은근히 깊은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가 더없이 보고 싶다.

막내아들 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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