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금융위기 땐 폭락한 美 집값, 코로나 위기 땐 폭등했다

공급부족에 수요증가…작년 매매가 14년만에 최고
높은 계약금·깐깐한 대출로 주택매매 거품 확 줄어

미국 주택 가격이 200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부동산 상승장이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주택 가격의 폭락을 불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위기는 오히려 주택 가격의 상승을 견인했다고 지적했다. 과거보다 주택담보대출 기준이 엄격해지고, 계약금 비율이 높아져 리스크가 줄어든 가운데 주택 공급의 부족이 가격을 떠받치는 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미국 주택의 매매가는 1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미 연방주택금융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주택 매매가는 전년 동기 대비 10.8% 증가했다. 이 증가 폭은 1992년 이후 가장 큰 수치다. 지난해 거래된 미 주택의 중위가격도 처음으로 30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4∼6월 매수자 4명 중 1명은 주택을 구매하는 데 50만 달러 이상을 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2000년대 중반 주택 버블과 붕괴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다수의 경제학자는 현재의 주택 경기가 훨씬 안정적이며 리스크가 적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주택담보대출 기준이 느슨해 신용이 낮은 이들이 대출을 많이 받아 감당할 수 없는 비싼 주택을 구매할 수 있었다. 금융회사들은 여러 주택을 담보로 파생상품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했고, 주택담보대출 연체자가 늘자 전체 금융시스템이 얼어붙었다.

반면 현재는 대출 요건이 강화된 상태다. 보스턴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앤서니 라맥치아는 WSJ에 “2004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데 보스턴 교외 지역의 주택 수요가 지금 가장 높다”며 “요즘 매수자들은 신용등급이 높다. 돈이 넘치는 이들은 주택 구매 시 더 많은 현금을 미리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텍사스에서 주택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숀 챈들러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뜨거운 시장”이라며 “구매자들은 비용이 어떻든 상관없이 집을 원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장 관계자는 올해에도 매매가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주택 수요가 늘어난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에 거주하는 도시 거주자들이 주택 가격이 저렴한 교외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관련한 주택 수요가 감소하더라도 주택 가격이 상승하거나 적어도 유지되는 추세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0대 후반에서 40대로 접어든 밀레니얼 세대가 내 집 마련을 시작하면서 저축을 늘리고 있는 가운데 시장의 공급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신규 주택 건설은 크게 줄어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매수세가 유지되고 부동산 시장 열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무주택자가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기엔 더욱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싱크탱크인 어반 인스티튜트는 2040년에 각 세대의 주택보유율은 같은 연령대였던 이전 세대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의 미국 청년층이 이전 세대에 비해 부를 쌓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라는 뜻이다. 어반 인스티튜트는 2020∼2040년 흑인의 주택보유율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지난 10년간 백인과 흑인의 자가보유율 격차는 벌어진 상태다.

부동산 중개업체 레드핀의 대표 글렌 켈만은 “주택은 사치품이 됐다”며 “경제가 공식적으로 둘로 쪼개진 것 같다. 한쪽이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집을 사기 위해 광란의 질주를 벌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