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非군사 분야 안보도 허문 文정부 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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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소장 前 숭실대 초빙교수

최근 행정안전부가 합동참모본부에 실제훈련을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관심을 끌었다. 업무 협조 공문이 본의와 달리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하는 행동으로 비쳐 담당 공무원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비상대비는 전시와 사변,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해 평시 △충무계획 수립 △각종 동원자원 관리 △교육훈련과 확인 평가, 유사시 △국가동원을 통한 군사작전 지원 △정부 기능 유지 △국민 생활 안정 기능을 발휘하는 비군사 분야 안보다. 1968년 1·21사태를 계기로 충무계획 수립과 을지연습을 시작한 이래 국가안보에 크게 기여해 왔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남북,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 연합훈련 축소·중단과 함께 을지연습을 내팽개친 결과 빚어진 이번 항의 소동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을지훈련 중단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 정부와 군 부문이 상호 연계·통합돼 수행되는 총력전수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네트워크 기반의 실시간 정보 공유, 자원 관리와 상황 보고 체계, 충무사태별·전쟁단계별 조치와 운영은 현대전 수행에 필수적이다. 또한,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한미연합사와 군 외 정부 부처와의 시스템 연동 여부도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핵을 이고 있는 우리에게 국가 총력전 수행절차 숙달을 위한 실제훈련은 생명줄과 같다.

둘째, 국가전쟁지도본부의 의사결정 연습 기회 상실이다. 군통수권자와 전쟁지도부의 전쟁수행 국면 전환, 적기 자원 동원과 투사, 접적지역 주민 철수 등 필요한 의사결정 연습을 못 해 유사시 대응 조치 실패 가능성을 키운다. 지난해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시신소각 사건 당시 수준 이하를 보인 정부의 위기대응 태세 및 프로세스 개선과 고도의 전문성 배양은 실제훈련 없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전시 국가동원 차질 발생이 우려된다. 을지훈련은 평시 각급 기관과 동원 업체의 임무 수행 절차 숙달, 담당자 업무 전문성 배양, 자원 비축관리 등을 확인·평가하는 데 있다. 따라서 유사시 조건반사적 반응은 실제훈련을 통해 체득시키는 것이 최상의 훈련 방법이다. 도상훈련, 컴퓨터 활용 훈련은 실효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훈련 매너리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넷째, 전시에 국민 피해를 가중시킬 확률이 높다. 북한의 핵·화생공격, 민방위 상황대비 실제훈련은 국민 피해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주민 불편 초래나 민원을 빌미로 국민 참여 훈련을 기피·외면하는 건 직무유기이자 국민 기망행위다. 위기관리 매뉴얼 개선은 훈련이 전제조건이다. 2017년 하와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가상해 실시한 주민대피 훈련이 귀감이다.

끝으로, 중장기 비상대비훈련 전략 수립이다. 현행 을지훈련을 전·평시 안보 위협을 아우르는 국가위기종합훈련(One-source multi-use)으로 재설계하고, ICT 기반 과학화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며, 훈련 범위와 실시 주기도 개선해야 한다. 등화관제, 시제품 생산, 동원자원 인계인수, 인적·물적 자원 동원 등 실제훈련 실시와 업무 전문성을 위해 과거 비상기획위원회 같은 독립된 조직 기능 복원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지도층의 타락과 공공성 상실, 군사훈련 소홀에서 비롯됐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했다. ‘북핵 인질’ 현실을 직시하고 북의 도발 억지와 전시 총력전 수행을 위해 비상대비훈련 정상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