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의 정치카페>개헌론 띄우는 親文, 야당 인사 회유까지…‘文 퇴임 후 안전’ 확보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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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틀대는 개헌론 與野 속내

‘협치’ 내세우지만 야합 통한 ‘문재인 적폐 덮기’ 비판 나와…이재명·윤석열 입장 따라 대선 지형 요동칠 듯
개헌 블랙홀, 정권교체 희석해 야당 필패 초래 지적도…野 집권 후 ‘정계개편’ 통한 여소야대 극복론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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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꿈틀댄다. 대선 지형의 변수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여권 내 친문(친문재인) 진영은 겉으론 “협치를 위하여”라고 외치고 있지만, 속으론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안전판 마련과 정국 주도권 유지를 노리고 있다. 야권 내에서는 집권 후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분권형 개헌의 불가피성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일부 세력의 사익 추구와 야합 가능성이 지적된다.

이미 청와대와 여당이 개헌을 미끼로 야권 인사들에게 접근하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개헌론이 한번 본격화하면 다른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선 주자 지지율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대권 후보 지지도 투톱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장과 태도에 따라 개헌론은 대선 지형을 가르는 대형 폭탄이 될 수도 있다.

◇개헌을 둘러싼 움직임

최근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야당 인사에게 ‘개헌모임’ 참여를 권유했다. 수도권 재선 의원 출신인 A 씨에 따르면 여권의 B 씨가 최근 “이제 그만 방황하고 함께 모임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왔다. B 씨는 친문 진영의 핵심 인사다. B 씨가 말한 ‘모임’이란 전·현직 의원들이 주축이 된 10여 명 규모의 ‘개헌모임’을 말한다. 여당의 대선 주자, 현 정권 장관 출신의 중진 인사, 현직 청와대 수석 등 무게 있는 인사들이 구성원인 만큼 B 씨의 제안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A 씨는 ‘회유’를 즉각 거절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개헌을 고리로 여야 인사들과 접촉 중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사실이라면 박 원장은 정권교체 이후의 대비책을 마련하거나, 분권형 개헌을 내용으로 하는 미션을 실행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대중 정권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씨는 박 원장을 겨냥해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우선한다는 걱정이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복심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공공연히 개헌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는 “향후 진보·보수를 뛰어넘는 초당적 협력을 하고 통합의 정치로 가려면 답은 연정밖에 없다”면서 “여야 모든 후보가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 뒤 당선되는 분이 정권 임기 초에 개헌을 추진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또한 여야를 넘나들며 꾸준히 조기 개헌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자와 만났을 때 그는 “윤석열을 포함한 대선 주자들은 대통령 5년을 다 하겠다고 욕심부려서는 안 된다. 임기 2년만 하고 2024년엔 분권형 개헌을 토대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의 반응이 없자 지금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게 이런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靑·친문의 개헌 속셈

개헌론은 여권에서 더 꿈틀댄다. 그만큼 여권이 절박하다. 청와대는 향후 적폐청산의 과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권은 의회 우위를 통한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개헌을 추진할 태세다. 여기에 야권 내 일부 인사가 여당과의 권력 공유를 꿈꾸며 개헌에 관심을 보인다. 이들이 내건 대의명분은 상생과 화해,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협치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임기 말이나 퇴임 후 망명, 피살, 자살, 탄핵, 본인·직계가족의 감옥행과 같은 불행을 겪었다. 따라서 임기 말 분권형 개헌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받는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걱정하는 것도 ‘퇴임 후’다. 지금 정치권에 스멀스멀 번지는 개헌론에 청와대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인 이유다. 여당 대권 주자 중에서는 이낙연, 정세균, 이광재 등이 개헌론을 꺼내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박병석 국회의장도 공개적으로 개헌 깃발을 들었다.

야권은 야권대로 고민이 있다.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최소한의 권력 공유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고, 집권한다 해도 민주당이 절대 의석을 가진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차하면 ‘식물정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회 내 소수정당인 야당이 집권 후 취할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권력 분산 개헌, 다른 하나는 정계개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김종인 전 위원장은 대표적인 조기 개헌론자다. 정 전 의장은 전화통화에서 “현재의 의석 구조로는 우리 측이 집권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원집정제가 되든 내각제가 되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 역시 기자와 만나 “정권교체가 돼도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 구성 때문에 차기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헌이냐 정계개편이냐

하지만 야권의 다수는 ‘조기 개헌 불가’ 입장이다. 개헌론의 속성상 정권교체론 같은 다른 이슈를 삼켜버림으로써 ‘야당 필패론’으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개헌론은 이슈를 전환해 실정을 덮으려는 정권 주류세력과 개헌으로 사익을 추구하려는 야권 일부가 야합해 권력을 나누자는 것”이라며 “현 정권의 잘못을 그냥 덮으면 미래로 나아갈 출발점이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언주 전 의원은 “이 시점에 개헌론은 절대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권력을 갖다 바치자는 일종의 정치 쿠데타”라고 말했다.

야당 내에서는 집권 후 필연적으로 봉착하게 될 여소야대 정국을 개헌이 아닌 정계개편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장성민 전 의원은 “대선 정국에서 개헌론을 꺼내는 것은 문 정권의 적폐를 덮고 가자는 논리이며 일종의 적전분열”이라며 “야권의 대권 주자들은 집권 후 정계개편에 대한 구상을 갖고 대선 레이스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정의화 전 의장도 “개헌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2024년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경우 야당 지지자들이 대통령을 2년만 하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인가 하는 점이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최 전 원장과 직접 개헌 문제를 논의한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관심은 대선주자 투톱의 입장과 태도에 쏠린다. 이재명 지사와 윤석열 전 총장 측은 아직은 개헌론에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다. 대선 승리의 희망이 보이는데 굳이 엉뚱한 프레임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정치권의 개헌 드라이브에 따라, 여야 대선 주자들의 호응과 반발 및 이합집산에 따라 대선 지형이 근본적으로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개헌을 둘러싼 움직임 :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꿈틀대고 있음. 특히 여당에서 강함. 청와대와 여당이 개헌을 미끼로 야권 인사들에게 접근해 회유하는 정황도 있음. 개헌론자들은 통합과 협치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움.

靑·친문의 개헌 속셈 :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임기 후 불행을 겪음. 청와대와 친문이 걱정하는 것도 ‘文 퇴임 후’임. 이들은 개헌으로 퇴임 후 안전판을 확보하고 의회 우위의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기를 꿈꿈.

개헌이냐 정계개편이냐 : 야당에서는 집권 후 여소야대 정국을 ‘개헌’이 아닌 ‘정계개편’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옴. 대선주자 투톱의 태도에 따라 개헌론은 대선 지형을 가르는 대형 폭탄이 될 수도 있음.


■ 용어 설명

‘정계개편’은 주로 여당이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야당 의원을 영입해 세를 불리는 ‘인위적’ 개편을 말함. 1990년 여소야대에서 민정당이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한 사례가 있음.

‘개헌론’은 집권 후 대통령 임기를 2년만 채우고 분권형 개헌을 해 2024년에 총선을 실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함. 청와대와 여야의 셈법은 다르지만, ‘권력 공유’라는 명분과 이해로 연결돼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