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조각가 “ 아름다움이 뭔지… 지금도 몰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종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가리키며 “저것들에 종교성이 깃들어 있다”며 “반가사유상의 맑고 깨끗함이 내가 갈 길이라고 여기며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 최종태 ‘구순을 사는…’ 회고전

작품 77점·에세이집·도록 등
대학스승 김종영미술관서 전시

“스승을 벗어나는데 20년 걸려
머리 어지럽히던 것에서 자유
캄캄한 터널밖으로 나온 기분
모르지만… 예술, 있되 없어야”

“예술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릅니다.” “내 작품의 얼굴이 대부분 둥그런 모양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인물상 중 몇 개만 남자를 대상으로 했고 나머지는 모두 여성상이에요. 나도 그 이유를 몰라요.”

올해 90세의 예술가 최종태는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그가 지식이 모자라 무지를 고백하는 것은 아닐 게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온갖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아는 척’에 집착하지 않는 나이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닐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인, 24.5x8x111㎝, 나무에 채색, 2013.

그가 ‘구순(九旬)을 사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오는 12월 31일까지 진행하는 초대 회고전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계단을 거뜬히 오르내릴 정도로 건강했다. 보청기를 끼고 있긴 했으나 대화도 활발히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요즘 새벽에 깨 작업실에 가면 저녁 먹을 때까지 10시간을 일할 때도 있다”며 “일할 때가 참 기쁘고 좋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조각, 드로잉, 판화 77점을 선보였다. 에세이집과 도록 24권도 전시해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는 서양 추상 미술이 풍미하던 시절에 미술 학도로서 공부했지만 다른 길을 걸었다. 평생 인물을 작품 제재로 삼아 조각과 회화로 구현했다.

“중학생 때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었어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상에 대해 충격을 받았지요. 어려서 일본제국주의 신민으로 살았음에도 해방 때까지 그걸 인식하지 못했던 것, 6·25전쟁과 4·19혁명 등을 겪었던 것도 큰 영향을 줬어요. 삶을 내 예술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지요.”

세상사에 시달리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창작 동기였던 셈이다. 인물 조각상이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과 관련, 그는 “형태를 추구하기보다 인생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 스승이자 교수 선후배로 함께 했던 김종영을 기리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게 된 것이 감회가 큰 듯했다. “허허, 저 양반(김종영) 작품을 본 후 내 작품을 만나면, 아마 같고도 다르다고 할 거예요. 저 양반을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벗어나려고 했어요.”

그가 스승 김종영과 장욱진을 존경했다는 것은 미술계에 유명한 이야기다. 서양 조각가 콩스탕탱 브랑쿠시와 알베르토 자코메티도 사숙한 스승들이다. “그분들을 벗어나는 데 20년이 걸렸어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니 그분들이 해 놓은 것을 이해하니까 비로소 자유롭게 되더군요.”

그는 실제 어떤 유파도 따르지 않고 최종태의 예술을 만들어왔다. 그 방향은 ‘맑고 깨끗함, 그리고 영원한 평화’다.

“50년 전에 서양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일본 교토(京都)에서 반가사유상을 본 후 말했던 것이에요. 내가 그 경지까지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쪽을 향해 걸어왔지요.”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종교성을 품고 있다. 신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명동성당의 ‘예수성심상’(1987)을 만들었고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지냈다. 그런데 동년배인 법정 스님과 교우하며 길상사의 ‘관음상’(2000)을 만들기도 했다. 서로 다른 종교가 그의 예술 세계에서는 다투지 않고 어우러진 것이다.

그의 나무 조각은 근년 들어 색(色)의 다채가 두드러진다. 예전엔 나무 고유의 빛을 살리려 했으나, 사찰의 단청 전통을 떠올린 후 색을 입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내 작품의 얼굴이 밝아졌다”며 “그 전에는 어둡게 살았던 탓에 밝게 할 수 없었다”고 웃었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온 기분”이라는 그의 말들은 선승(禪僧)의 법문 같기도 했다. 일단 “모르겠다”고 전제한 후 “생각해보면 이렇다”며 전한 말들이 특히 그랬다. “예술은 있되 없어야 합니다. 추사 김정희가 ‘법이 있어서도 안 되고 없어서도 안 된다’고 했잖아요. 동서양 미술사가 내게 모두 있되 그것이 명령하지 않아야 합니다.” “둥그런 것은 부드럽지요. 거기서 모든 선(線)이 나옵니다.” “여성적인 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어느 분이 내 전시회 방명록에 썼더군요. 이후 그걸 오래 생각했어요.”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