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새싹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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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면 해가 잘 드는 땅은 벌써 푸릇푸릇하다. 긴 겨울 동안 잠시 쉬었던 생명 활동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싹이라 부른다. 더 애정을 담아서 부르고 싶으면 새싹이라 부르고 그것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트다’로 표현한다. 때로는 움이라 부르고 그것이 생명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움튼다고 표현한다. 움은 언제든 틀 수 있지만 봄이 제격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싹이나 움이 거저 트는 것이 아니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 이미 그 땅에 자리를 잡고 있던 씨앗이 때가 돼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일 뿐이다. 본디 그 땅에 자리를 잡고 있던 어미들이 떨어뜨린 씨앗일 수도 있고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빈 땅을 찾아 날아온 것일 수도 있다. 싹은 본디 ‘삯’이었다. 일의 대가로 받는 품값과 말이 우연히도 같다. 이미 그 땅의 주인이었거나 빈 땅에 자리를 잡았으니 삯을 이미 치르고 움이 튼 것이다.

그런데 ‘싹’이 ‘싸가지’가 되면 말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보통은 ‘싹’에 작은 것을 뜻하는 ‘아지’가 붙은 말이라 본다. 개와 소의 새끼를 각각 강아지와 송아지라고 하는 것과 같이 본다. 그러나 일상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무슨 이윤지 싸가지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보통 배려나 예의가 부족한 사람을 싸가지가 없다고 표현하니 그 뜻이 좋지 않아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새싹 채소가 채소 판매대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아기 손톱 크기의 떡잎과 가느다란 뿌리가 겨우 보일 무렵의 새싹을 비빔이나 샐러드 재료로 파는 것이다. 어차피 먹으려고 재배하는 작물이니 언제 먹든 따질 일은 아닌데 그 어린 것을 먹는 것이 왠지 꺼려지기도 한다. 싸가지가 싹에서 온 것이라면 싹을 먹는 것은 싸가지를 먹는 것이다. 싹을 먹어치우면 싸가지가 없어진다. 말장난이 아니다. 잘 키워야 할 싹을 무참히 없애 버리는 세상에서는 말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