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에너지 의존도 높은 유럽, 분열 시작되나

EU 기업 10여곳 루블화 결제
우크라전쟁 ‘反러 연대’ 위기

러시아가 폴란드·불가리아로 향하는 가스관을 봉쇄하면서 에너지 수급을 둘러싼 유럽 국가들의 분열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서방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직간접적으로 도왔던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자원 보복이 계속될 경우 유럽의 ‘반(反)러시아’ 단일대오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블룸버그통신은 27일 최소 10개 이상의 유럽 기업이 천연가스 대금을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이미 지급했거나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는 등의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기업 에니(Eni)가 가스프롬은행 루블화 계좌 개설을 위해 이탈리아 정부와 유럽연합(EU)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러시아는 전날 폴란드·불가리아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단하면서 “루블화로 가스 대금을 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미국과 서방의 각종 규제에 자금줄이 마르자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볼모로 루블화 마련에 나섰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핵심 동맹인 영국도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약 200만 배럴의 석유를 러시아에서 사들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CNN에 따르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영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이후 2억7600만 달러(약 3491억4000만 원)가량의 석유를 수입했다”고 주장했다.

EU는 급히 진화에 나섰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가스를 앞세워 협박을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폴란드와 불가리아 모두 EU 주변국으로부터 가스를 원활하게 공급받고 있다”며 “러시아의 결정이 유럽 소비자들에게 가능한 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서방의 의존도가 워낙 높았던 만큼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