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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게재 일자 : 2022년 05월 13일(金)
도라지 유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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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 때문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술이 있으니 ‘도라지 위스키’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술은 술이로되 도라지, 그리고 위스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용물부터 이름까지 ‘가짜의 가짜’이기 때문이다. 이 술이 1960년대가 아닌 대한제국 시기에 나왔다면 아마도 ‘조정유사길(鳥井惟斯吉)’이란 이름을 달고 선뵈었을 것이다.

위스키가 이 땅에 처음 선보였을 때 대부분의 서양 이름이 그렇듯이 비슷한 음의 한자로 적은 이름이 붙여졌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 유사길인데 요즘 중국에서는 ‘威士忌’, ‘威士酒’라고 쓴다. 어떻게 쓰든 위스키와 발음이 똑같을 순 없지만 한글로는 원음과 비슷하게 적을 수 있다. 그리하여 유사길은 곧 위스키로 대체돼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름은 손쉽게 한글로 적더라도 술은 마음대로 만들 수 없으니 위스키는 전량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보통사람에게 위스키는 그림의 떡이었는데 그 갈증을 채워 준 것이 도라지 위스키다. 그러나 맥아를 발효한 후 증류해서 만든 것이 아닌, 주정에 위스키 향을 섞은 것이다. 차마 원산지인 스코틀랜드의 상표는 가져다 붙이지 못하고 일본의 ‘도리스 위스키(Torys Whisky)’ 상표를 붙이고 나왔다. 도리스는 창업자 이름인 ‘鳥井(torii)’에서 온 것인데 결국 상표권 분쟁에 휘말려 발음이 비슷한 ‘도라지’로 바꿔 붙이게 됐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시를 보면 유리잔으로 마시는 페르시아산 포도주가 등장한다. 정철이 대한제국 시절에 살았다면 유사길로 장진주(將進酒)를 읊었을지도 모른다. 60년대를 경험한 최백호는 도라지 위스키로 낭만을 노래하지만 요즘 세대는 싱글 몰트 위스키로 같은 맛을 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시대의 감성과 당시의 진심이 담겨 있다면 모두 괜찮다. 그 감성과 진심이 어디에선가 나처럼 늙어 가면 더 좋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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