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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22년 05월 24일(火)
한국인 멤버 ‘0’ 한국어 가사 ‘0’… ‘K-팝 3.0’ 국적·언어를 초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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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비주얼+칼군무 동작
하나의 ‘음악장르’로 굳어져

“국적 따지는것은 소모적 논쟁
더 이상 한국인만의 영역 아냐”


게티이미지뱅크

“전부 K-팝 같다” “너무나 익숙한 구도와 비트, 색감까지…가사만 한국어로 바꾸면 ‘뮤직뱅크’에 나올 것만 같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에 올라온 한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아시아 국가 대중음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모아 편집한 영상 속 그들의 비주얼과 음악은 정말 ‘K-팝스럽다.’ 화려한 색감의 의상과 메이크업, 빠른 비트와 ‘칼군무’, 중독성 있는 후렴구까지. 가사가 태국어, 카자흐스탄어라는 점만 빼면 누가 보든 “새로 나온 K-팝 가수인가” 싶을 정도다.

K-팝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Q-팝(카자흐스탄 팝), P-팝(필리핀 팝), T-팝(태국 팝) 등도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K-팝 베끼기에만 급급했던 몇 년 전과 비교해 이들의 실력 또한 크게 늘었다. 필리핀의 5인조 남성그룹 ‘SB19’은 지난 1월 빌보드 핫 트렌딩 송즈 차트에서 ‘Bazinga’라는 곡으로 7주간 1위에 오르며 방탄소년단(BTS)의 ‘Butter’(버터)가 가진 최장기 정상 기록을 잠시 꺾은 적도 있다. 하지만 아직 이들은 K-팝의 ‘국지적 확산’ 정도로, K-팝의 위상을 뛰어넘진 못하고 있다. SB19도 따지고 보면 필리핀에 진출한 한국의 기획사가 론칭한 그룹이다. 결국 소속 멤버들의 국적으로 앞글자만 Q, P, T로 바뀌는 K-팝의 변형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K-팝은 무엇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 기획사가 제작한 필리핀의 아이돌 그룹 SB19. 지난해 동남아시아 최초로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파란을 일으켰다.

◇K-팝 3.0 시대의 시작

K-팝에 대한 공식 정의는 없다. 본래 ‘대한민국의 대중가요’라는 뜻이지만 K-팝의 국적이 희미해지며 정의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K-팝 그룹들에 외국인 멤버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 즉 아주 오래전이다. ‘K-팝이냐, 아니냐’ 논란은 최근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미 NBC방송이 주최한 ‘아메리칸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한국계 미국인 ‘알렉사’를 두고 일각에선 ‘미국인이 하는 팝인데 K-팝 가수라고 부르는 게 맞느냐’는 물음이 나왔다.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 학생들의 실험으로 탄생한 미국인 K-팝 그룹 ‘EXP에디션’, 영국에서 데뷔한 K-팝 걸그룹 ‘가치’(KAACHI)도 있지만 일부에선 여전히 “한국인도 없고 한국말도 없는데 무슨 K-팝이냐”는 반응이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는 앞서 “외국 회사가 기획한 한국 국적의 가수, 그리고 한국 회사가 기획한 외국 국적의 가수. 어느 쪽이 K-팝인가”라고 논쟁점을 제기하면서 “이제 K-팝의 정의가 바뀌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어느 나라 가수가, 어느 언어로 노래하느냐만의 문제는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지금을 ‘K-팝 한류 3.0 시대’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티스트와 음반을 기획해 해외시장에 진출시키는 것이 ‘1.0’이고 해외 현지 회사와 합작하거나 해외 멤버를 영입해 한국 아티스트와 함께 혼합시키는 것이 ‘2.0’이었다면, 현지 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들고 현지 아티스트를 발굴해 육성하는 ‘3.0’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멤버 전원이 일본인인 JYP의 니쥬와, 멤버 모두가 중국인 혹은 중국계로 이뤄진 SM의 웨이션브이가 각각 2020년, 2019년 데뷔해 인기를 얻고 있고, 하이브 재팬은 오디션 프로그램 ‘앤오디션’을 통해 일본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그룹을 만들고 있다. SM은 또 미국의 대형 제작사 MGM과 손을 잡고 미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할 보이그룹 ‘NCT할리우드’를 준비 중이다.

◇칼군무와 화려한 비주얼 가진 K-팝, 하나의 장르로

그렇다면 ‘3.0 시대의 K-팝’은 어떨까. 많은 게 다르진 않다. 다만 국적과 언어의 경계가 희미해진다는 게 특징이다. 애초부터 K-팝은 ‘한국적’인 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었다. 물론 K-팝의 고유한 특징은 있지만 이것이 한국의 ‘민족문화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K-팝의 주요 특징으로 △일체성을 강조한 퍼포먼스(이른바 ‘칼군무’) △화려한 비주얼 △기획사의 프로그래밍 △활발한 SNS 활동을 꼽았다. 미 워싱턴포스트(WP)도 최근 기사에서 K-팝의 주요 특징이자 성공 요인으로 △중독성 있는 후렴구 △화려한 비주얼(visual appeal) △따라 하기 쉬운 포인트 안무 △SNS를 활용해 구축한 강력한 팬덤을 지목했다. ‘갈등하는 케이, 팝’의 저자인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교수는 “K-팝은 특별한 개성을 갖는다. 그런데 그 개성이 한국적인, 민족문화적인 것이 아니다. 무대 퍼포먼스와 춤, 의상, 뮤직비디오, 기획사-아이돌 시스템 등이 결합된 독특한 특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K-팝이라는 게 한국인만 구현할 수 있다거나 한국어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케이팝:대한민국 대중음악과 문화 기억상실증과 경제 혁신’의 저자인 사회학자 존 리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석좌교수는 “이미 미국 개신교 선교단이 들어오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반도의 고유한 소리 풍경은 사라졌음에도 한국인들은 K-팝 속 한국적인 것을 억지스럽게 찾으려 한다”며 “대한민국의 ‘수출 강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알렉사의 소속사 비지레이블의 김준홍 대표는 “이제 K-팝은 하나의 장르다. 이제 K-팝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라며 ‘힙합’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인이 흑인 음악인 힙합을 한다. 잘한다. 힙합을 하는 아티스트의 피부색이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라며 “‘문화 쇄국정책’처럼 걸어 잠그는 것보단 펼치는 게 K-팝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지난 2019년 인도에서 열린 K-팝 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우리도 K-팝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요”였다. 이에 김 대표는 “인도인이든 누구든 누구나 K-팝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K-팝 역사의 새로운 시대는 우리가 알아채기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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