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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공 리더십 게재 일자 : 2022년 08월 08일(月)
호텔식당 36곳 총지휘… “조리 비법 대신 자부심·책임감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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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양식당 ‘팜코트’의 역사를 잇고 있는 웨스틴조선 서울의 ‘나인스게이트’에서 조형학 조선호텔앤리조트 전무를 만났다. 조 전무는 유서 깊은 호텔이니만큼 전통을 지키면서도, 자칫 ‘올드하다’는 느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본질에 집중하면서 진화한다’는 목표와 기준을 세워 젊은 직원들과 소통한다고 했다. 곽성호 기자


■ 주방 보조에서 임원으로 - 조형학 조선호텔앤리조트 전무


특급호텔 주방은 엄격한 직급 구분에 따른 수직적 지휘체계의 조직이다. 호텔 레스토랑의 홀은 여유롭고 평화스럽지만 주방은 집중과 긴장, 분업과 협업 속에서 숨 가쁘게 돌아간다. 호텔 기업은 객실 관리, 그리고 식음과 조리부서의 두 축으로 굴러가는데 이 중 가장 규율이 엄격한 곳은 조리부서다. 규율이 엄한 만큼 지휘체계의 정점에 있는 총주방장은 책임이 무겁다. 조선호텔앤리조트 조형학(58) 전무는 주방 출신으로 임원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요리사 출신으로 특급호텔 상무 자리까지 오른 경우는 간혹 있고, 주방에서 나와 총지배인으로 전업한 뒤에 호텔 대표까지 지낸 경우도 있지만, 끝까지 주방을 지키면서 전무급까지 오른 이는 극히 드물다.

전국 43개 사업장 700명 관리
임원된 이후에도 주방 안 떠나

“억압적 지시는 주방 질식게해
자율적으로 일하게 공감 유도”

직원들과 목표 공유·성장 도모
‘서번트 리더십’으로 조직 독려

“조리사, 칼보다 입맛 예리해야
요리는 불·칼·집중력 합친 것”



첫 직장에서 키친 헬퍼(kitchen helper), 그러니까 주방보조 시절, 교육이란 명목으로 선배의 폭언과 구타 속에 믹싱볼에 푼 달걀 90개를 국자로 떠 오믈렛을 부치며 ‘당장 때려치울까’를 생각했다던 그는 어떤 리더십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엄한 규율의 주방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웨스틴조선 서울의 컨템퍼러리 와인&다인 레스토랑 ‘나인스게이트’에서 조 전무를 만났다. 환구단이 내다뵈는 근사한 조망의 나인스게이트는 중후한 클래식 프렌치를 기반으로 세련된 요리를 선보이는 웨스틴조선 서울의 대표 레스토랑.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호텔인 조선호텔의 첫 양식당 ‘팜코트’의 98년 역사를 잇는다. 조선호텔 전체 주방을 총괄하는 총주방장의 33년 요리인생과 리더십 얘기를 듣는 배경으로 이보다 나은 자리가 있을까.

우선 초년병 시절 그가 겪은 호텔 주방의 리더십 얘기부터 들었다. 그의 호텔 입사는 당시 특급호텔에 근무했던 친척의 영향이 컸다. 막연한 동경만 있었을 뿐, 그때만 해도 요리는 별 관심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호텔 주방에 발을 들이게 됐다. 1989년 주방보조로 A 호텔에 입사했을 무렵 주방은 군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기강이 셌다. 일을 가르친다는 명목 아래 욕설은 물론이고 정강이를 차거나 손찌검을 하는 일도 흔했다. 상사와 선배는 늘 거칠고 감정적으로 직원과 후배를 대했다.

“맞고 자라면 더 때리게 되거나, 아니면 아예 안 때리게 된답니다. 뭐, 진짜 때린다는 뜻은 아니고 매사에 폭압적이 되든지, 아니면 정반대로 설득력을 갖게 되든지 한다는 얘기지요. 저는 후자입니다. 억압하고 누르기보다 이해시키고 설득하려 합니다. 억압적인 리더십은 당장은 통하는 것 같지만 주방 공간을 질식하게 하고, 구성원의 정신까지 황폐하게 만듭니다.”

조형학 전무는 전국 호텔의 36개 식당을 지휘하고 있으면서도, 칼을 놓지 않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든다. 감(感)을 잃지 않기 위한 것도 있지만 직원들과의 소통과 이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가 주방을 지휘하며 주력하는 건 목표와 가치의 공유다. 식재료 다듬는 요령이나 음식 조리 비법을 직접 가르치거나 친절한 서비스를 지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는 직원들에게 내가 왜 지금 주방에 있는지,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며 그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고, 그걸 왜 해야 하는지를 공감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지시와 공감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 얘기를 하면서 조 전무는 예를 하나 들었다.

“스테이크 코스요리를 주문한 손님이 식사 중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다고 합시다. 평소의 속도로 음식을 내가면 식은 스테이크를 먹게 될 게 뻔합니다. 그거야 손님 사정 때문이니 그래도 큰 불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한 한 조리와 서빙의 속도를 조정하려 노력합니다. 아예 조리를 다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세심하고 정성스러운 서비스를 하자’고 요구하는 게 ‘지시’라면, ‘우리는 그 정도의 퀄리티를 갖추고 있는 곳이란 자부심을 갖자’고 하는 것이 ‘가치의 공유’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건 조리의 기술보다 자부심과 책임감이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만 자신의 성취도 이룰 수 있다는 게 조 전무의 지론이다. 훌륭한 요리 실력은 꾸준한 수련을 통해 길러지는데, 고된 수련을 이겨내도록 하는 동인이 자부심과 책임감에서 나온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조 전무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공유하면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개인적 성취로 이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조선호텔앤리조트 전무인 그는 웨스틴조선 서울뿐 아니라 계열 호텔 사업장의 주방 전체를 총괄해 지휘한다. 전국의 계열 호텔 내 사업장만 36곳. 여기다 호텔 밖 직영식당 7곳까지 합치면 총 43곳의 사업장을 지휘하는 셈이다. 거기 속한 주방 인력만 700명이 훨씬 넘는다.

그가 맡고 있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제회의나 국빈급 만찬의 주방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수많은 변수에 대응하면서 그때그때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럴 때 총주방장은 치밀하면서도 때로 과감하기도 한 야전사령관 역할을 해야 한다. 요리를 하지 않는 주방에서도 총주방장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사업장의 메뉴를 구성해야 하고, 사업장 주방장이 조리사들에게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과정까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제시간에 정확한 온도의 음식을 제공하려면 주방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자로 잰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것도 총주방장의 역할이다.

조 전무는 아직 칼을 놓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전무로 승진한 뒤에도 귀하게 대접해야 하는 손님이 있거나, 굵직굵직한 행사가 있을 때면 지금도 늘 주방을 지킨다.

“친분이 없고 요청이 없다 해도 예술가나 디자이너, 혹은 국제적 명성의 오피니언 리더 등 이른바 ‘트렌드 세터’ 모임 테이블은 직접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메뉴를 짜고 음식을 직접 만듭니다. 솔선수범이지요. 전적으로 손님을 위한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호텔 주방을 점검하게 됩니다. 고객은 주방에서 음식만 만드는 줄 알지만, 주방에는 다양한 일이 있습니다. 식재료의 재고를 파악해서 발주하고, 재료가 도착하면 입고와 검수하고, 소요 수량별로 사업장으로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 재료를 다듬고 전처리하는 것까지 체크해야 할 게 끝도 없습니다. 현장에서 발을 빼면 이런 사정에서 어두워지는 게 당연합니다. 주방에서의 리더십은 현장에서 함께할 때 비로소 인정받는 겁니다.”

그는 달변은 아니지만 인터뷰 도중 핵심을 찌르는 ‘어록’이 될 만한 얘기를 툭툭 던졌다. 이를테면 “불과 칼, 그리고 집중력이 합쳐져서 요리가 만들어진다”거나 “조리사는 칼보다 입맛이 더 예리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다. “본질에 집중하면서 진화한다”는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웨스틴조선 서울의 유서 깊은 역사가 ‘올드하다’는 선입견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늘 변화와 혁신을 고민한다며 슈퍼카 포르쉐의 자동차 디자인 철학에 빗댄 이야기였다.

정리해보면 그의 리더십은 조직원과 목표를 공유하고 성장을 도모하는 이른바 ‘서번트 리더십’에 가깝다. 이런 리더십이 구성원들에게 불어넣는 건 의지와 열정이다. 주방에서 구성원의 열정은 단단한 팀워크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웨스틴조선 서울의 일곱 개 식음업장 중에서 가장 팀워크가 좋은 곳은 어디일까. 조 전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식당 ‘스시조’를 들었다.

“맛있는 음식은 조리사의 손끝에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재료의 사입부터 관리, 그리고 적절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주방의 팀워크와 집중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스시조가 지금의 명성과 평판을 갖게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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