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인류에겐 대가 바라지 않는 ‘선물 교환 DNA’ 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08-19 09:08
  • 업데이트 2022-08-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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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루이스 하이드 지음|전병근 옮김|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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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단어 ‘gift’는 재능과 선물이라는 뜻을 함께 지닌다. 원제 ‘gift’를 ‘선물’로 옮긴 미국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루이스 하이드의 책은 바로 이 단어가 품은 중의적 의미에서 출발한다. 문학·음악·그림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는 ‘재능’은 단순히 창작자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선물’이기에 선물과도 같은 재능을 대가 없이 사회에 환원하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녀 이야기’로 잘 알려진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1983년 첫 출간 이후 수많은 독자의 사랑 속에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선물’에 대해 “예술가의 일, 그리고 예술과 사회의 본질적 관계를 성찰한 책”이라고 평했다.

책은 먼저 다양한 인류학 기록을 토대로 선물 순환의 역사를 훑는다.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의 뉴기니 마심족은 예로부터 조개껍데기로 만든 팔찌와 목걸이를 주고받았다. ‘쿨라’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의례적 교환을 통해 섬 전역에 걸쳐 장신구가 가가호호 전달됐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은 사냥꾼이 숲에서 획득한 사냥물을 사제에게 선물하면, 사제가 다시 그 일부를 숲에 돌려주는 의식을 진행한다.

이처럼 인류의 몸에 새겨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 교환의 DNA는 오늘날 태어날 아기를 위한 축하 파티부터 유년기의 생일잔치, 학교 졸업 선물, 결혼 선물, 관 위에 놓인 꽃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매 정거장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문지방 선물’로 이어졌다.

선물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곧 창작자의 예술작품이 대중에게 유통되는 과정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저자가 보기에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예술가 역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시민이기에 ‘어떤 작품으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생계를 위해 시장과 타협하면 할수록 예술가의 재능이 마모되면서 그가 만든 작품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의 본질을 잃게 된다.

저자는 돈이 예술가에게 미치는 부당한 ‘왜곡 효과’를 고민한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 월트 희트먼, 부업으로 안정적 작품활동의 기반을 마련한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사례를 통해 예술가가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재능을 발현한 모범 사례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숫자로 승패가 갈리는 시대에 저자의 메시지는 다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예술가가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시장과 타협하는 행위’라고 깎아내릴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약 40년 전에 쓰인 ‘선물’의 가치가 희미해지는 건 아니다. 예술에 관한 한 누구보다 꼿꼿하고 견결한 태도를 지닌 이 근본주의자는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난 주체적 삶이 아름다운 예술의 바탕임을 시적이고 철학적인 문체로 일러주기 때문이다. 672쪽, 3만 원.

나윤석 기자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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