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리자 ‘짖지 않던 개’ 짖어… “올 한국 물가상승률 5.5%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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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31주년 특집
- 지표로 본 경기예측 (소비자물가 언제 꺾이나)

Fed 대차대조표 자산 9조달러
금융위기 이전의 9배로 늘어나
각국 양적 완화로 고물가 초래

韓 물가상승률 24년來 최고치
금리 지속인상에도 ‘정점’가물
IMF의 내년 韓전망치는 3.8%

현재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동성(돈)이 시중에 풀렸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 단위가 아니라 세계 경제에 풀린 유동성이 사상 최대라는 뜻이다.

2일 국제금융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상 자산은 약 9조 달러에 달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비하면 2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 비하면 9배로 늘어난 수준이다. Fed의 자산이 이렇게 급격히 늘어난 것은 시중의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대규모로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는 ‘양적완화(量的緩和)’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 등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대부분 유동성 공급 확대에 나섰다. 그 결과 현재 세계 경제에 추정조차 어려운 규모로 유동성이 늘어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돕는다면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3월 미 의회는 1조9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구조 계획’ 예산을 통과시켰다. 가뜩이나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상황에서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럽·일본 등 다른 주요국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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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돈을 뿌린 결과는 물가 폭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장기간 저금리에도 침묵을 지켜오던 ‘짖지 않던 개(The Dog That Didn’t Bark)’가 드디어 짖기 시작한 것이다. 물가를 아서 코넌 도일의 단편소설 ‘실버 블레이즈’에 나오는 짖지 않던 개에 처음 비유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이 2013년 4월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World Economic Outlook)’이었다. 짖지 않던 개가 다시 짖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엄청난 위험이 불어닥칠지 사전에 경고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0%였다. 앞으로 물가가 5%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대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IMF가 10월 11일 내놓은 최신 세계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5.5%다.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다. 다른 말로 하면, 올해 우리나라 국민은 외환위기 시절 이후 가장 높은 ‘물가고(苦)’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IMF의 내년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8%다. 이나마 시중에 풀린 과잉 유동성을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등을 통해 일부 거둬들인다는 가정 아래 나온 것으로 보인다.

향후 물가 상승률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2가지 변수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과 국제 유가의 추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최근 Fed와 한국은행 등은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 주체의 고통이 매우 크지만, 물가를 잡지 못하면 모든 경제 정책이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최근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잡힐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Fed와 한은을 포함한 중앙은행이 금리를 계속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은의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3.25∼3.5% 정도라는 전망이 많다. 국제유가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거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현재 전망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금리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월가의 베테랑 투자자 마크 모비우스 캐피털 파트너스 공동설립자는 10월 17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인플레이션(물가)과의 전쟁’ 여파로 미국의 정책 금리가 9%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


한국 기준금리 연말 3.25∼3.5% 전망… 미국은 연말 4.4% 예상

■ 금리 · 성장률

고금리 탓 기업 자금조달 비상
한경연 “韓 내년 성장률 1.9%”

코로나19 발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풀린 유동성(돈)이 물가를 급격히 끌어올리자 글로벌 경제에 금리 인상 ‘붐’이 일고 있다. 금리를 인상하면 빚이 많은 경제 주체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고,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지만, 고삐 풀린 물가를 잡기 위해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리를 올리고 있다.

2일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명간 네 번째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단행을 준비하고 있다. Fed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사실상 ‘제로 금리’(0~0.25%)였던 정책 금리를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3~3.25%로 높였다. 9월 FOMC에서 공개된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에 따르면, 미국 정책금리 전망치(중간값)는 올해 말 4.4%, 내년 말 4.6%다. Fed가 앞으로도 금리를 계속 올릴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2020년 5월 0.50%까지 내렸던 기준금리를 올해 10월 3.0%까지 올렸다. 한은의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3.25~3.5% 정도라는 예상이 많다. 한은도 앞으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금리를 인상하면서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가운데 예전에도 그랬듯 예금금리의 인상 폭보다는 대출금리가 더욱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이미 7%를 넘어서면서 빚 많은 가계와 기업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중 예금금리도 2금융권에서 이미 8%대 상품이 나왔다.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는 앞으로도 추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돼 경제 주체들의 리스크(위험) 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민간 자본시장에서는 기업 등의 자금 경색이 심화하고 있다. 투자 리스크가 커지자 높은 금리를 제시해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도 기업 등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이 이어지고, 일부 기업은 부도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성장률 등 거시경제 지표에도 조만간 ‘빨간불’이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경제가 위기 상황에 놓이면 휘발성이 높은 금융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그 뒤를 이어 시차를 두고 거시경제 지표가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조경엽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경제 정책 세미나’에서 “미국 등 주요국은 이미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고, 한국은 초입 단계”라고 지적했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같은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올해 2.3%, 내년 1.9%로 전망했다.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