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꽁꽁 얼어붙은 사랑의 온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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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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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찬 교육학자, 前 서울예술대 교수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동네 백화점 근처에서는 빨간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사람이 구세군 냄비를 걸어 놓고 종을 치며 모금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광장에는 ‘사랑의 열매’ 모금액을 알리는 온도탑이 세워져 있는데, 열 개 눈금 중 한 개만 찼다. 예년에는 거의 반은 찼다. 광장을 오가는 사람 중에 온도탑을 유심히 보는 사람도 없다. 경기도 얼어붙었고, 사람들의 마음도 얼어붙었다.

TV를 보면 정치인들은 가슴에다 사랑의 열매 배지를 달고 있다. 추운 거리에 내걸린 정치인의 플래카드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의 말은 없고 정치 선전 일색이다. 사랑의 열매 온도탑 앞에서 종을 치며 모금하는 정치인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기업인은 유명 대학에 자신이나 기업의 이름으로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엄청난 돈을 기부한다. 하지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기금이나 복지시설 마련에는 인색하다. 각 개인도 주로 자기 가족과 사랑을 나눌 뿐,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데는 인색하다.

최근 어느 신문을 보니 경비복을 입은 한 어르신이 랜턴을 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기사를 읽어 보니, 70대 중반인 그는 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던 예전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1억 원을 내겠다고 약정했단다. 첫해에 1000만 원을 냈고, 그다음 해에는 적금을 해지해 9000만 원을 냈다. 한 달 월급 120만 원을 10년 동안 꼬박 모은 돈이었다. 지금도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이웃을 돕고 있다고 한다.

30여 년간 나눔을 실천한 사람도 있다. 처음은 몇만 원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눔 통장을 만들고 10년간 10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름도 직업도 밝히지 않았다. 매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거액의 돈을 넣고 사라지곤 했다. 약속대로 10년 안에 10억3500만 원을 기부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구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그가 나눈 돈은 모두 20억 원이 넘는다. 그는 나눔 문화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밝혔다. 일흔이 넘은 어르신으로, 대구 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22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시상식 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손에 만원이 있다면 1000원은 힘들지라도 100원은 아낄 수 있습니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필요한 곳이 있습니다. 적다고 망설이지 마시고 일단 시작해 보세요. 그러면 선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이런 분들 덕에 그나마 사회가 따뜻하게 유지되나 보다.

필자도 사랑의 봉사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성탄 전날이었다. 산타 복장을 하고 주로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와 사는 어린이들을 찾아갔다. 대부분 단칸방이나 지하에 살고 있었다. 만나러 가기 전에 어린이들에게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뭔지 물었다. 그리고 그날 그 선물을 들고 찾아갔다. 게임기도 있고, 운동화도 있고, 예쁜 가방도 있었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선물을 받아 든 아이는 마냥 좋아했다. 손자와 손녀의 좋아하는 모습을 본 어르신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산타들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매섭게 추운 밤이었으나 마음은 따뜻했다. 두고두고 기억되는 보람 있는 일이었다.

“선행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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