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대한민국의 시작은 1919년이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4-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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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前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 위원장

최근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정부 방침이 나왔다. 또, 4·19혁명의 주역들이 이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민의에 따라 1960년 하야한 용단을 새삼 재평가하며 화해의 참배를 했다는 사실은 모두 우리를 흐뭇하게 하는 경사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역사 화해의 논리 가운데 숨겨졌던 ‘1948년 건국대통령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16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 아닌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 때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토와 주권의 실질적 확보를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뉴라이트 학자들의 견해와 같다. 분명한 역사 왜곡이요 국가 정통성이라는 더 큰 가치를 간과한 만큼 임시정부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 매우 우려스럽다.

대한민국 기원은 1919년 3·1독립선언이다. 독립선언서가 전국에 전파돼 독립정신의 기본이 되면서 전 세계에 독립 요구가 울려 퍼졌다. 이 독립선언이 기초가 돼 국내외에서 정부수립이 진행됐다. 그해 4월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3도 대표회의로 결성된 한성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러시아령에 소재한 대한국민의회와, 상하이임시정부 등과 통합해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출범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 총선이 있었고, 헌법이 제정됐다. 개회식에서 초대 국회의장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의 기원은 1919년 기미년 독립선언과 임시정부 수립에 있다 △오늘 수립된 정부는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이다 △대한민국의 민국 연호는 기미년부터 원년으로 기산해야 한다 △이 국회는 완전한 한국 전체의 중앙정부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의장의 개회사 정신은 제헌헌법 전문에서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립됐고,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재건한 것으로 강조했다.

1987년 오늘의 헌법을 개정할 때 필자는 여야의 지도자 및 헌법개정위원들과 합의 아래 전문에서 분명하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로 확실하게 정리했다. 대한민국은 1919년 조선왕조가 끝나고 3·1독립선언으로 민주공화국이 세워졌다.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정통성은 우리 대한민국에 있다.

만약 우리가 역사적 정통성을 포기하고 뉴라이트 식으로 ‘1948년 대한민국이 건립됐다’고 한다면, 똑같은 해 북한 정권이 수립된 것과 대비된다. 이는 우리 스스로 역사를 1919년에서 후퇴시켜 북한과 같은 해 수립된 것으로 하자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주장을 봉쇄하는 이런 강변이 과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목소리인가? 어느 쪽도 전 한국민의 정통성·역사성의 우위를 주장할 수 없게 만든 이런 발상이 대한민국 국익에 이로운 것인가?

북한은 우리의 ‘1919년이 대한민국의 기원’이라는 주장에 열세를 느끼고 이를 만회하고자 역사적 사실을 조작했다. 즉, 1926년 김일성이 15세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만들었고, 이때 비로소 독립운동이 시작됐다고 역사를 날조했다. 이처럼 북한은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독립투쟁의 역사를 날조하는데, 뉴라이트에서는 엄연한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까지 지워가면서 북한 정권과 같이 1948년 동열에 놓고 우열을 가리겠다고 한다.

일찍이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미년부터 기산하라”고 강조했는데, 기념관을 짓겠다면서 그분의 말씀을 역행한다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 새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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