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제 빙자한 집회… 시민불편 야기 땐 해산 가능

■ 건설노조 ‘노숙집회’ 논란

문화제 등은 신고의무 없지만
깃발·구호 제창 땐 ‘편법 집회’
윤희근 청장 “강제 해산” 경고

시민단체 “문화제 형식 변화해
‘요즘 집회’ 특성 모른다” 반발

지난 16∼17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서울 도심 ‘1박 2일 노숙 집회’와 관련해 경찰이 ‘야간 문화제를 빙자한 불법 집회’는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히면서 실제 경찰이 강경 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15조에 의거해 학문이나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는 사전 신고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촛불 문화제, 추모제 등은 여타 집회와 달리 경찰에 사전 신고할 필요가 없으며 경찰도 이를 금지할 수 없다. 다만 기존 판례를 종합하면, 이런 문화제에서 특정 목적의 구호를 제창하거나 그 구호가 담긴 현수막, 깃발 등을 동원하면 경찰은 이를 불법 집회로 판단하고 해산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앞서 16일 건설노조는 ‘노숙 집회’에 앞서 집회 신고 시간인 오후 5시 이후 인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200일 추모제에 합류해 집회를 이어가 ‘편법 집회’ 논란을 빚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8일 “야간문화제 등을 빙자한 불법 집회는 현장에서 해산 조치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 18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43주년 촛불 문화제’를 살펴보니 문화제와 집회 성격이 혼재돼 있었다. 한쪽 무대에선 추모공연이 이뤄졌고, 다른 한쪽에선 ‘윤석열 정권 퇴진 서명운동’이 진행됐다. 무대 옆엔 “제발, 윤석열 정권 무너트려 주십시오”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기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단순히 구호 제창 등 집회로 볼 요소가 발생했다고 해산 명령을 내리긴 쉽지 않다”면서도 “공공의 안전과 질서에 명백한 위험을 끼친다고 판단할 경우, 예를 들면 야간에 주요 도로를 막고 교통 소통에 방해가 되면 해산 대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문화제라는 이름을 달고 사실상 ‘편법 집회’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순수한 문화제라면 특정 이익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나 정권 퇴진 등의 정치적 구호를 외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이어 “편법 집회와 문화제를 구분하는 구체적·세부적 기준을 세우고, 현장 지휘관들이 편법 집회를 가려낼 수 있도록 재량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문화제와 집회의 모호한 경계를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적 구호와 선전이 난무했던 과거의 집회·시위가 최근에는 문화제 형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집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것이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단순히 구호만 외치는 집회는 시민들의 관심을 못 받는다”며 “요새는 시 낭송, 연극, 노래 공연 등 문화적인 요소를 프로그램에 넣어 문화제를 연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회와 문화제, 서로가 서로를 차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집회든 추모제든 행사 취지에 맞게 운영이 되면 문제가 없고, 경찰도 도로 통제, 시민 보행로 확보 등 안전 관리 대책을 세우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