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일본 뒤흔든 ‘과로 우울증’… 지금 한국 사회와 무섭도록 닮았다[북리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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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기타나카 준코 지음│제소희 외 옮김│사월의 책


우울증은 우리 시대 질병이지만 나라마다 문화마다 그 역사와 양태가 다르다. 일본의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 게이오대 인문사회학과 교수가 10년 가까운 현장 조사 끝에 내놓은 책은 일본 우울증의 어제와 오늘을 탐구한다. 저자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말, 일본에서 자살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그 이유로 우울증이 지목되면서부터였다. 일본에선 1998년 이후 14년간 한 해에 3만 명이 넘게 자살을 했다.

그 중에서도 저자의 관심을 끈 것은 과로사. 정확하게 말하면 과로로 인한 자살, 과로 우울증이었다. 과로사는 일본에서 1980년대 지나치게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를 죽게 만드는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다. 서양 친구들이 일본인들은 왜 죽음에 이를 만큼 일을 하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묻자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전근대엔 우울증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약간의 우울감을 ‘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우울증을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았다. 1880년대 독일로부터 정신의학이 도입됐지만 우울증은 심각한 중증 환자들의 것으로, ‘비정상’이라고 낙인 찍어 배제함으로써 일상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이 같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 계기는 1990년대 말 경기불황이었다. 거품경제의 붕괴, 효고현 남부 지진,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사건 등이 일어나 세기말적 비관론이 높아지면서 자살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2000년, 일본 대법원이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에 직원의 사망에 대해 유례없는 큰 액수의 보상금을 가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리면서 과로사와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발했다. 덴쓰는 직원의 자살이 본인의 자유 의지에 의한 행위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만성적이며 과도한 업무로 인해 발생한 우울증의 결과라고 판단했다.

이후 업무로 인한 우울증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소송이 이어졌고, 이중 많은 수가 승소했다. 급증하는 법적 분쟁과 우울증 환자 수에 놀란 일본 정부는 새로운 정신 건강법을 마련하고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 질환을 중요한 국가적 문제로 다루고 통제하기 위한 일련의 노동정책 변화를 시작했다.

여기에 정신과 의사들이 우울증을 사회 현상학적 경향으로 집어내고, 우울증 약을 팔려는 제약회사들이 가세하고, 판사가 관련 판결을 내리면서 사회적으로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이처럼 우울증의 역사를 짚어가는 것은 결국 그 원인을 살피는 것이고, 그래서 대응방향도 마련할 수 있다고 봤다.

지금 한국사회는, 1990년대 말 우울증과 자살률이 폭증했던 일본과 매우 유사한 흐름을 보여준다. 책은 2011년에 출간됐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 상당한 시사점을 던지는 이유다. 392쪽, 2만5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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