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 독자 남편과 상할머니까지 모신… 95세 현역주부 장모님[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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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합니다 - 김귀순

장모님은 올해 95세의 현역 주부시다. 부모님과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장모님이 유일한 부모님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공직을 떠난 나는 야인생활이 길었다. 다시 일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퇴임 후 절차탁마에만 힘을 쏟았다. 나 대신 가장 역할을 떠맡은 아내가 마음고생, 몸 고생을 했다.

기약 없이 딸을 고생시키는 미운 사위였을 터인데도 장모님은 일절 내색하지 않으셨고, 싫은 소리 한마디 없었다. 명절 때나 평소에 처가에 가면 한결같이 따뜻하게 대해 주시며 정성을 다해 갓 지은 밥에다 상을 차려주셨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풋고추조림과 고추부침개를 해놓으시는데 술안주로는 최고였다. 처남들은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 사람들이라 늘 술 상대는 장모님이셨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음식을 넉넉히 싸주시기도 했다. 아내도 집에서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재료보다도 손맛이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비결인 것 같다. 생일이면 잊지 않고 아내 편에 두툼한 봉투도 보내주셨다.

장인어른, 장모님의 합동 칠순 잔치는 63빌딩에서 치렀다. 잘 놀고 소리를 멋들어지게 하는 고교 동기에게 사회를 부탁했고, 노래하고 춤도 추며 보냈던 그 순간 장모님은 행복해하셨다. 나도, 큰처남도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처가 식구와 함께 지리산 자락의 콘도에 놀러 갔던 일, 그리고 제주 시내의 바닷가 주택에서 싱싱한 제주 갈치, 고등어를 요리해 먹었던 일도 아름다운 추억거리다.

노래를 좋아하시는 장모님을 젊은 시절에 가끔 모시고 노래방에 갔었다. 장모님의 애창곡은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였다. 지금도 유모차를 밀고 마실 다니신다. 그 연세에 동네의 또래나 동생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란다. 여전히 머리가 맑으시니 우리 자식들의 복이다.

장모님은 1남 4녀 가운데 셋째 딸이다.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는데, 장모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혼해서 시댁에 가니 상할머니까지 과부 3대가 한집에서 살고 계셨다고 했다. 그 시절 얼마나 시집살이가 고달팠을지 짐작이 간다. 장인어른은 7대 독자셨다. 당시 도청에 근무하셨는데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 가정사에 무심한 한량이라 장모님이 가장 역할을 하며 2남 2녀를 길러내셨다.

지금도 본인 명의의 집에서 사시니 자식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하시다. 젊은 시절 당신이 돈을 버니 손이 크셨다. 친정 식구들의 애경사도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조카들은 장모님을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으로 여긴다. 때때로 찾아와서 봉투도 드리고 막걸리도 대접한다. 현업에서 오래전에 은퇴한 지금도 자식, 손주, 증손주를 챙기는 것은 여전하시다. 여유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평생을 해오신 습관이다.

시집간 딸은 여름이면 동해안에 콘도를 잡아놓는다. 나는 장모님과 아내를 대동하고 2박 3일 여름휴가를 떠난다. 평소에도 장모님이 필요한 약을 챙겨드린다. 6학년 외손녀가 장모님께는 ‘기쁨조’다. 우리가 못하는 효도를 딸이 대신해주니 고맙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딸이 성장하는 동안 예뻐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신 결과일 것이다.

내가 퇴임 후 한 달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고 두 달간 일본 열도를 도보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장모님이 건강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는 국내 굴지의 기업 회장실에서 줄줄이 조화를 보내왔다. 문상객들이 사위가 국회의원인가 물었다고 한다. “사위 덕에 꽃길 속에 보내드렸다”고 장모님은 가끔 얘기하신다.

장모님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막걸리를 나누며 모진 세월을 멋지게 이겨내신 장모님께 박수를 쳐 드리고 싶습니다. 장모님.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사위 허남정(한일경제협회 전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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