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 복원 의미는 ‘소통의 복원’[문화논단]

  • 문화일보
  • 입력 2023-10-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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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경인여대 교수·생태교육

선친께서 시골에서 한약방을 하셨는데, 약방은 안방과 미닫이창 칸막이로 붙어 있었다. 식사시간에 약방 손님이 오시면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미닫이창을 빼꼼하게라도 열어두어 식사시간이라는 사적 시·공간일망정 손님과 말 없는 대화를 같이하셨다. 나는 밥 먹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는 게 불쾌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친의 소통에 대한 예의가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말을 ‘비먼겅(閉門羹·문 닫고 죽 먹기)’이라는 관용구로 표현하는 걸 보면,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남이 있는 곳이라면 비록 사적 공간일지라도 함부로 문을 닫지 않는 소통 문화가 있었다고 보인다.

광화문 월견대(月見臺·월대)가 꼭 100년 만에 복원됐다. 월대가 소통의 공간이었음은 여러 정황상 확실하다. 이를 근거로 월견(月見)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두 가지 소통 문화를 얘기해 본다.

우선, 왜 달인가? 궁중에서 이뤄지는 모든 정치적 행위들은 태양으로 상징돼 밝고 공명정대하게 이뤄져야 하는 데 비해, 소통이란 정치적 공식을 떠나 여유 공간으로서 달을 상징해야 제대로 이뤄지는 것으로 믿는다. 예컨대,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철학은 ‘어느 상황에서도 할 일 하면 된다’는 것으로, 뚜벅뚜벅 가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태양만 있고 달이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월대 복원을 통해 많은 시사점을 얻어야 할 것이다. 달의 소통 문화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면, 우리 사회가 소통이 부족한 근본 이유는 ‘저녁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불야성을 이루는 서울의 밤거리는 소통의 달 문화가 아니라, 여전히 해가 뜬 백야의 정글 같다. MZ 세대들이 기성세대와 단절하려는 것도 달의 소통을 스스로라도 찾아 나서려는 몸부림 정도로 보인다. 그동안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자는 사회적 논의도 있었지만, 태양 논리에 가려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월대 복원과 같이 생각해야 할 중요한 화두다.

또, 왜 광화문인가? 경복궁의 법전인 근정전·인정전·명정전·숭정전·중화전 모두 이중의 월대로 구성돼 있지만, 근정전은 나머지 네 궁궐의 정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상하층 월대의 사방에 난간을 두르고 각 모서리와 계단의 법수(法首)에 상서로운 동물 조각을 놓았는데, 이는 정치의 근간이 되는 소통의 공간으로 작용하는 중요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근정전 월대는 핵심 정치 공간으로서의 전정(殿庭)에 놓이므로 전각의 정문인 광화문과 일직선의 축을 갖고, 이 축이 이어져 궁 밖으로 나오면 백성들의 뜨락으로서 다시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앞은 지금 시민의 광장이다. 시대는 변했으나 의미는 사라질 수 없다. 광장 민주주의 민심을 월대로 받아 소통한 것이 근정전 뜨락으로 일직선으로 연결돼 정치의 근간이 돼야 한다는 의미로 이 공간의 일직선 논리를 해석하는 것은 필자뿐일까? 설령 그런 건축적 의미가 애초에 없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민심 소통의 정치적 의미를 월대 복원에 맞춰 같이 복원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민심의 일직선 소통을 상징하는 정치문화의 복원이 바로 광화문 월대 복원의 더 큰 의미다.

묻고 싶다. 세계 어느 나라 궁전이 소통을 상징하는 광장은 있을지언정 이런 일직선 소통을 상징하는 문화를 담고 있는가? 정말 자랑스러운 소통 공간이지 않겠는가? 그 공간 속에 우리 정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광화문 앞 월대는 경복궁 전체 크기에 비하면 선친의 한약방처럼 빼꼼한 크기나 마찬가지지만, 민초들은 그 빼꼼함을 좋아한다, 원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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