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그 향기, 프랑스서 맡다[북리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1 08:59
  • 업데이트 2023-12-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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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향기
카를 슐뢰겔 지음│편영수 옮김│마르코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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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향수에 관한 책이다. 너무나 유명한 향수 ‘샤넬 넘버 파이브’와, 소련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레드 모스크바’.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개지만, 그 기원은 같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향수를 고리 삼아 20세기 격동의 유럽 역사를 훑는다.

“향수에 관한 책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저자는 러시아 역사 전문가다. 그가 1980년대 초반 소련의 주요 행사장에서 맡았던 향기를 이후 프랑스에서 다시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오페라, 콘서트 등 행사장에서 나던 향기의 주인공이 ‘레드 모스크바’였고, 이 향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연구하다 ‘레드 모스크바’와 ‘샤넬 넘버 파이브’가 같은 기원을 가진 것을 발견한 뒤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두 향수의 공통된 기원은 1913년 로마노프 왕조 수립 3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하나의 향수다. 프랑스 사람인 알퐁스 안토노비치 랄레가 모스크바에 설립한 알퐁스 랄레 회사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 향수는 특히 로마노프 왕조의 여덟 번째 군주였던 예카테리나 2세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이 향수의 제조법을 알고 있는 알퐁스 랄레의 두 명의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와 오귀스트 미셸이 이후 각각 ‘샤넬 넘버 파이브’와 ‘레드 모스크바’를 만들었는데, 둘의 운명이 갈라진 것은 1917년 러시아 혁명 때부터다. 혁명의 혼란을 피해 고향인 프랑스로 넘어간 보는 코코 샤넬을 만나 새로운 향을 선보였고, 이는 ‘샤넬 넘버 파이브’가 됐다. 반면 러시아에 남기를 택한 미셸은 이후 국유화된 향수 회사에서 일하며 ‘레드 모스크바’를 만들어냈다.

책은 향수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역사로 이야기를 넓혀간다. ‘샤넬 넘버 파이브’의 성공으로 보는 프랑스 향수 산업에서 가장 유명한 조향사로 이름을 떨치지만, 미셸은 이후 스탈린 시대 대숙청의 혼란에 휩쓸려 사라진다. 스파이라는 의심을 쉽게 살 수 있는 외국인이자 사치품 생산의 종사자로서 대숙청이라는 억압적 조치와 연결됐을지 모른다는 추측만 있을 뿐. 어느 날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그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책은 코코 샤넬과 더불어 혁명 이후 러시아의 향수, 화장품 산업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폴리나 젬추지나 몰로토바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룬다. 스탈린 체제 소련의 외교장관이었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의 아내인 그녀는 권력의 핵심층에 속했다 스탈린 통치 마지막 시기에 ‘유대 민족주의자들과 밀통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유배됐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에야 풀려난 그녀는 1970년 사망할 때까지 열렬하고 심지어 광적인 스탈린주의자로 살았다. 240쪽, 2만 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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