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17회 아산의학상 임상의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원영(서울아산병원 응급실장) 울산대 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문호남 기자
■현안 인터뷰 - 김 원 영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장
15년전 응급중환자실 개소 주도
음압격리실까지 갖춰진 시스템
이젠 선진국 의료진도 부러워해
내과 꿈꿨지만 인턴때 진로 바꿔
힘든 길인줄 알면서도 지원한 것
응급의학과, 필수의료 정책 소외
의대는 의사 되려는 사람이 와야
의대진학 자체가 목표인 학생들
포기하거나 방황하는 사례 늘어
인터뷰 = 권도경 사회부 차장 kwon@munhwa.com
환자에게 마지노선이 되는 의사들이 있다.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중증환자의 골든타임을 지켜주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들이다. 응급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곳이다. 분초를 다투는 처치, 끊임없이 들리는 기계음과 비명, 팽팽한 긴장감 등 극한 환경 탓에 응급실은 전쟁터에 비유된다. 매년 국내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약 1000만 명이다. 경증과 중증환자가 뒤섞여 과밀화가 가장 심한 곳이기도 하다. 응급의학은 미국과 유럽에서 1960년대부터 전문 분과로 인정받은 반면 국내에서는 1990년대 들어 태동했다. 최근 몇 년간 응급실은 정부 지원과 민간병원의 투자가 맞물리면서 크게 발전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같은 전문 의료인력이 확충되고, 응급중환자실 등 선진국형 체제도 도입됐다.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지난 30년간 자리 잡는 과정에는 김원영(서울아산병원 응급실장) 울산대 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의 궤적이 담겨있다. 김 교수는 국내 최초로 응급의학과 중환자의학 등 2개 분야 전문의 자격을 땄다.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지역응급의료센터 중에서 처음으로 응급중환자실을 여는 것도 주도했다. 중증 응급환자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심정지, 패혈증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얼마 전 제17회 아산의학상 임상의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교수가 응급의학에 매료된 때는 인턴 시절이었다. 의대에 다니면서 꿈꿨던 건 내과 의사였다. 막상 병원에서 수련을 받자 생각은 달라졌다. 당뇨 등 만성질환을 주로 다루는 내과는 환자를 치료하기보다는 관리하는 개념이 강했다. 전문 분과로 일찌감치 인정받은 내과는 교수진과 진료체계도 잘 잡혀 있었다. 매일 외래나 병동에서 보는 환자 수도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김 교수는 힘든 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지원했다.
“응급실에서는 의식이 없던 환자가 치료를 받은 후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내과와의 큰 차이점이었죠.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꼈던 지점이기도 했어요. 응급실은 한계가 없는 곳이에요. 외래 진료에선 환자 수를 시간에 따라 제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응급실은 언제 중증환자 몇 명이 몰려올지 모르는 극적인 공간이죠. 인턴 시절에는 응급의학과가 여러 가지로 정립되지 않은 영역이기도 했어요. 제가 할 일이 많겠다는 느낌이 들었죠.”
위급한 환자를 자주 치료한 경험은 중증환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김 교수가 응급의학과 펠로(전임의)를 마친 직후 지난 2008년 국내에서 중환자 전문의가 신설됐다. 스승의 권유를 받아 중환자실에서 수련을 다시 받은 후 시험을 통과해 중환자의학 전문의를 딴 국내 첫 사례가 됐다.
“응급실에서 수련 받을 때만 해도 중증환자라는 개념은 없었어요.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군대에서 크게 다친 중증환자를 자주 치료했었어요. 이때 중환자실에서 치료 체계를 배워 응급실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응급중환자실의 필요성도 느끼게 됐죠.”
김 교수는 2009년 서울아산병원에 응급중환자실을 개소한 주역이다. 응급중환자실은 응급실에서 생긴 중환자가 입원하는 곳이다. 응급실로만 들어올 수 있는 만큼 여러 질환을 복합적으로 앓아 일반 진료과가 기피하는 환자들이 대다수다. 지역응급의료센터였던 서울아산병원은 응급중환자실을 반드시 운영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새로 생긴 응급중환자실을 둘러싸고 각 진료과 의료진과의 신뢰를 쌓는 데도 몇 년 걸렸다.
“응급실에서는 진단받지 않은 중증환자가 빠르고 적절하게 처치를 받아 생존하는 게 중요합니다. 환자가 빨리 치료받지 못하면 수술과 회복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립니다. 응급실에 왔을 때 의식 없는 순간을 서너 시간만 줄여줘도 환자가 퇴원하는 시기를 하루 이틀 앞당길 수 있어요. 환자에겐 굉장히 큰 시간이에요. 중증환자가 잘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게 가장 보람이 큽니다.”
이 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는 매년 평균 480명이 치료받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 의료진들도 “응급중환자실과 음압격리실이 갖춰진 응급실 체계가 부럽다”고 평했다. 응급중환자실은 환자 생존율을 끌어올렸다. 응급중환자실 개설과 다학제(여러 과가 공동진료) 처치가 잘 맞물린 성과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의 심폐소생술 생존율은 국내 평균(5.8%)의 5배인 30% 가까이 올라왔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응급실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현실은 정반대다. 응급의학과를 지원하는 전공의 숫자가 줄어들어서다. 올해 응급의학과 전공의 충원율은 79%까지 떨어졌다. 충원율은 2021년 100%를 기록했지만 2022년 93%, 2023년 85%까지 추락했다. 고되고 험한 의료 현장에서 일하지만 보수는 적고 정책 지원은 미미해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미용 의료 등 돈을 벌기 쉬운 개원가로 속속 떠나고 있다.
“이번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도 응급의학과는 소외됐습니다. 어렵고 힘든 현장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버티는 의사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보상책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험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미충족 필수의료에 대한 미래를 제시해야 후학들이 지원합니다. 응급실은 비어있어야 기능하는 곳입니다. 응급실은 24시간 깨어있는 곳인 만큼 의료자원과 비용이 다른 과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요. 심혈관센터나 권역외상센터처럼 인건비 직접 지원 등 응급의학과에 초점을 맞춘 대책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중증 환자가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응급의료 전달체계도 잘 개편돼야 합니다.”
응급실이 흔들리면 중증환자들이 가장 먼저 타격받는다. 응급실은 병원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이자 마지막 보루다. 요즘 들어 교통사고 환자가 줄어든 대신 내과계 만성질환자들이 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 탓이다.
“응급실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국민 평균 수명은 10살은 떨어집니다. 응급실 환자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만성질환을 앓는 내과계 환자가 증가했기 때문이죠. 집에서 퇴행성 질환을 앓다가 악화되면 오는 곳이 응급실이에요. 응급실이 버텨줘야 중증환자들이 회생할 수 있어요.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의료체계가 무너진 배경에는 응급실 폐쇄가 있었어요. 병원에 들어오는 문이 막히면서 환자들이 응급실 밖에서 숨졌어요.”
김 교수가 바라는 의사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의대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소명의식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가는 곳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의대 열풍이 거세지만 중도 포기하는 전공의도 늘어나고 있다.
“제가 의사가 된 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의대는 의사가 목표인 사람들이 와야 해요. 의대 자체가 목표인 학생들이 포기하거나 방황하는 사례가 꽤 많아졌어요. 의사는 힘든 직업이에요.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지 않는다면 치열한 병원생활에서 끝까지 버티기 힘들어요. 의사는 환자가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곳이 바로 응급실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원영(서울아산병원 응급실장) 울산대 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가 서울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 내 응급중환자실에서 중증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20년간 심정지·패혈증 환자 생존율 높이는데 힘써… 아산의학상 임상의학 수상
■ 김 교수는
김원영(서울아산병원 응급실장) 울산대 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는 20여 년간 심정지, 패혈증, 허혈성 뇌손상, 급성호흡부전 등 중증 응급환자 치료와 연구에 전념했다. 매년 10만 명 이상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을 2018년부터 이끌고 있다. 그는 국내 응급의학과 중환자의학이 막 정립되던 시기에 전문의를 딴 후 국내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김 교수는 심폐소생술로 소생한 후 바로 추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심정지 환자의 심전도 검사 결과를 분석해, 심혈관 질환이 아닌 뇌 지주막하 출혈이 원인인 환자를 바로 판별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후 생존한 환자 중에서 심전도 검사 결과 이상이 발견되면 대부분 심혈관 질환을 의심해 관상동맥조영술을 실시한다. 하지만 뇌 지주막하 출혈 탓에 심전도 검사 결과가 이상이 생긴 환자의 경우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하면 출혈이 심해질 수 있다. 치료방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연구를 통해 응급실에서는 뇌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가 필요한 환자를 즉각 선별할 수 있게 됐다. 이는 2017년 심장혈관 분야 세계적 학술지인 ‘미국심장학회지-심혈관 중재술’에도 게재됐다.
김 교수는 심정지 환자의 심정지 기간, 원인, 허혈성 뇌손상 정도에 따라 응급 치료법을 다르게 적용하는 맞춤형 중증 응급치료 임상시험도 세계 최초로 수행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에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실과 응급중환자실에서 중증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전담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환자 응급실 감염관리 지침을 개발하는 등 코로나19 의심 응급환자 진료 시스템도 마련했다. 그는 “전파력 높은 감염병 특성 탓에 응급의료체계 내 ‘트리아지(치료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환자 분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사전 환자 분류 체계’가 생겼다”며 “음압격리실과 코호트(동일집단) 격리실이 다수 만들어진 것도 성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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