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뭐 하고 놀까[살며 생각하며]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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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도 책도 없던 시절엔
딱지치기·소꿉놀이 등 즐겨

요즘 아이들은 혼자만의 시간
공동체에 필요한 덕목 못 익혀

인간은 타인과 관계 속에 살아
놀이 통해 규칙.협동 배워야


왜 갑자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말이 떠올랐을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는 김광규 시인의 시 제목이다.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애연하면서도 무력감이 느껴지는 시이다. 왜? 이 시였을까? 하고많은 시를 다 놓아두고. 달달한 연애시도 많은데. 아마 그랬을 것이다. 바닥에 누군가 그려놓은 그 도형들을 보는 순간, 군데군데 지워져 선이 단락된 채로 남아 있는 그 흔적들을 보자마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떠올랐을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 연상인 셈이다. 희미한 그 선들을 보고 그 시가 떠올랐으니 아무 맥락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이 먼저 떠올랐어야 했다. 그 모양이 오징어와 비슷했으므로.

그 도형은 아이들의 ‘사방치기’ 놀이판이었다. 세모와 네모와 동그라미와 반원이 결합된 그 도형이 마치 오징어를 닮았대서 ‘오징어게임’이라고도 한다. 가장 위쪽의 반원을 하늘이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땅에서 하늘까지 오르내리는 것이 게임의 방식인데, 금을 밟아서도 안 되고 칸을 놓쳐서도 안 되고 말을 줍지 못해도 탈락이다. 그 놀이의 다른 이름도 있다. 땅따먹기. 세상에, 땅따먹기라니! 하긴 우리나라는 산업화 이전엔 전형적인 농업국이었으니, 땅은 천하의 근본이자 부(富)의 상징이었다. 산업화 이후에도 치부의 수단이었으니, 땅따먹기는 일종의 욕망 놀이라 해도 좋겠다. 어쨌든 땅따먹기 혹은 사방치기는 놀이판 안에 말로 쓰는 돌을 차례로 던져 넣고 그 도형의 빈칸을 밟고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돌을 집어오는 게임이다. 가만 보면 신체의 근육을 골고루 사용해서 제법 운동도 된다.

작년 초, 엘리베이터에 전통놀이에 참여할 아이들을 기다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더니 그들이 남긴 흔적인 모양이다. 한동안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아이가 놀이를 지도하는 청년과 함께 그 놀이판에서 뛰는 것을 보았다. 한 발로, 그리고 양발로 뛰었다가 다시 한 발로 말을 주워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그 모양이 어째 어설프고 마지못해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아이는 말이 손에 닿지 않아 출발선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 놀이판을 벗어났다. 아이들에게서 도무지 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놀이인데, 하기 싫은 숙제를 하는 듯 보였다. 게다가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하라는 대로 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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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은 어땠던가. 지금처럼 컴퓨터도 없고, 책도 많지 않던 시절에 우리가 놀 수 있는 것은 그저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자치기, 오자미,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핀치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공기놀이, 딱지치기, 병정놀이, 소꿉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처럼 놀이도 많았고 또래도 많았다. 골목마다 아이들의 함성이 폭죽처럼 터졌고,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골목은 그렇게 매일 아이들의 생의 에너지로 들썩였다.

아이들은 그랬다. 그 놀이를 통해, 규칙과 협동과 단합을 배우고 승패를 인정하며 스스로 답을 찾고 사회적 기술들을 익혀 나갔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놀이들은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다. 골목에서도 노는 아이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아파트 놀이터에는 야구나 축구를 하지 말라는 주의문이 나붙어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뭐 하고 놀까? 내가 아는 대개의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제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타인과의 유대나 배려, 규칙, 승패에 승복하는 일 같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덕목들을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하긴, 아이들에게 놀 시간이 있기는 할까.

유아 때부터 놀이방으로,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시간 맞춰 다녀야 하는 아이들에게 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금기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잘 놀아야 창의성도 그만큼 는다는데, 아이들이 노는 방법마저 잊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찌감치 재능을 찾아 수련하고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방에서 감각들을 훈련하면서 다들 영재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고립적이고 폐쇄적일 것이다.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아이들이 조직 생활을 유연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삶이 행복할까.

고독한 천재와 유쾌한 범인(凡人).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는 알 수 없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다르므로. 하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놀이를 통해 협상과 협동 같은 자기 조절 기술들을 배우면 좋겠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최소한이나마 단체 생활과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율과 배려 같은 기본적 덕목들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성숙한 시민 의식에서 비롯된 살 만한 나라, 좋지 않은가. 그 나라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면 먼저 아이들이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진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놀이를 통해 그런 교육이 일찌감치 이뤄졌으면 좋겠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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