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무엇을 먹든… 풍성한 쌈, 맛있는 삶[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1 09:06
  • 업데이트 2024-03-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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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봄이 제철인 남해 멸치쌈밥.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쌈’의 계절, 봄

널찍한 채소와 밥·재료 한 입에 싸먹는 한국 고유의 음식 문화
日 ‘데마키’ 베트남 ‘월남쌈’ 등 해외선 재료 넣고 말아먹는 방식
고구려 문헌에 ‘비싼 상추’ 기록… 조선땐 쌈 싸먹는 예법 등장
푸성귀 풍성해 쌈 먹기 좋은 봄… 감자·김밥쌈 등 이색 메뉴도


뭐니 뭐니 해도 봄날의 최고 가치는 연두색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색도 그렇지만 상머리에 앉아 곧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갈 싱그러운 채소를 바라보자면 새 계절에 대한 반가움이 넘쳐난다. 봄날이 밥상에 펼쳐졌다. 쌈의 계절이 왔다.

“혹시 오늘도 쌈을 싸 드시지 않았습니까?”

생각해보면 어제도 그제도 쌈을 먹었다. 어제는 깻잎지에 쌈을 싸 먹었고, 그제는 김에 밥을 싸 먹었다. 그제 저녁엔 숭어회에 상추쌈을 쌌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쌈은 우리나라 한식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다. 쌈은 조리 방식이라기보다는 섭취 방식이다. 고기(생선)와 장, 밥, 쌈채 등 갖은 식재료를 준비해놓고 널찍한 채소에 싸서 한 번에 먹는다. 이런 형태로 채식을 즐기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퍽 드문 식문화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밥의 고기를 쌈으로 싸먹는 ‘궁물촌’의 국밥.



밥을 기본으로 반찬을 곁들여 먹는다는 점에서 우리 식문화와 가장 유사한 일본에도 쌈이란 찾아볼 수 없다. 김에 돌돌 말아먹는 ‘마키’는 있지만, 보자기처럼 싸서 먹는 문화는 없다. 모양만 보자면 나팔처럼 말아먹는 ‘데마키’가 얼핏 쌈 모양과 비슷해 보이지만 스스로 재료를 넣어 말아먹는 것이 아니고 제공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원리가 다른 음식이다. 난(nan)이나 토르티야(tortilla), 라이스페이퍼 등 곡물로 만든 쌈은 있지만, 순수한 잎채소로 싸는 쌈은 거의 드물다. 당연히 외국에서도 쌈을 그냥 쌈(Ssam)이라 부른다. 식문화 자체가 고유하니 우리 말이 그대로 세계적 표준이 된 셈이다.

한국인이 쌈을 얼마나 좋아하냐면 고기 종류는 물론, 생선회와 생선조림도 채소에 싸 먹는다. 심지어 김밥도 싸먹는다. 이도 저도 없으면 그냥 반찬을 싸기도 한다. 튀김을 잘라 상추에 싸 먹기도 한다. 유명한 광주의 ‘상추튀김’이다. 밥에 된장이나 고추장만 바르고 싸 먹는 경우도 일상다반사다. 괜히 세계적으로 채소 섭취량 선두권(2023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중 과채류 섭취량 1위)을 달리는 게 아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밥을 싸먹는 ‘진미집’ 돼지 불고기.



채소와 푸성귀가 많이 나는 요즘이 쌈 먹기에 좋을 때다. 쌈채로는 우선 가장 많이 먹는 상추와 깻잎부터 배추, 쑥갓, 케일, 치커리 등이 있으며 식감이 거친 호박잎이나 양배추는 살짝 데쳐서 부드럽게 한 다음 싸 먹는다. 영남에선 콩잎, 전남에선 열무잎으로 쌈을 싸기도 한다. 간장이나 양념장에 재운 장아찌도 싸먹고, 머위 등 비교적 넓다 싶은 이파리의 나물도 어김없다. 남새 쌈채가 귀한 겨울엔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에도 쌈을 싸먹고, 무를 얇게 저며 무쌈으로 먹기도 한다. 사철 상에 올려 먹는 김쌈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배추김치야 당연히 좋은 쌈 거리다. 갖은 재료를 곁들여 먹는 보쌈 역시 김치 쌈으로 돼지고기를 먹는 것에서 유래했다.

쌈은 우리가 옛날부터 먹었던 식문화다. 문헌 기록에 천금(千金)을 주고도 사기 어렵다는 고구려의 천금채(상추)가 나오기도 했다. 김쌈, 복쌈의 세시풍속도 간간이 등장한다. 훗날 조선에 들어선 쌈을 먹는 예법까지 등장한다. 너무 크게 쌈을 싸서 입을 떡 벌리고 먹으면 보기 싫고 천하다 했다.

농경 민족에게 쌈은 생활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 새참은 기본이 쌈이다. 그저 뜯어서 씻어 먹으면 되니 얼마나 간편한가. 장 종지를 앞에 두고 남새와 풋고추만 있으면 밥 한 공기쯤이야 어찌 삼킬까 문제가 될 리 없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송천휴게소’의 감자 쌈.



현대에 들어서 쌈은 어느새 한식의 기본처럼 자리를 잡았다. 횟집이니 고깃집에 쌈채는 반드시 등장한다. 주메뉴가 나오기 전부터 한편에는 어김없이 상추, 깻잎, 고추가 담긴 바구니가 자릴 잡는다. 장마로 상춧값이 비쌀 때면 고깃집에서 “차라리 고기를 더 줄 테니 상추는 참아달라”고 사정할 정도로 고기 상차림의 일부가 됐다. 평소 즐겨 먹지 않다가도 쌈채가 비싸다 하면 괜히 손이 더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쌈은 맛의 조화가 좋을 뿐 아니라, 여유가 느껴지는 식문화라 더욱 즐거운 음식이다. 천천히 창의력을 발휘해 쌈을 싸면 자신만의 맛을 추구할 수 있다. 상추를 뒤집어 깻잎을 겹치거나, 장은 뭘 바르고 김치는 또 얼마나 올리는지, 밤톨만 하게 밥을 올릴 수도 있고 그냥 고기만 싸 먹을 수도 있다. 배춧속을 얹을 수도 있고 쪽파나 치커리를 곁들여도 좋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열이 먹더라도 열 가지 쌈이 각각 달리 나올 수 있다. 바로 한식의 쌈 식문화다.

고기를 구워 손에 상추나 깻잎 등 쌈채를 올리고 고추와 마늘, 장을 얹어 한입 싸 먹는 것은 한식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진기한 풍경으로 다가온 때문인지 요즘 세계적으로 입소문이 널리 퍼졌다. 균형 잡힌 각각의 맛과 영양이 쌈 속에서 합해지며 더욱 좋은 맛을 낼 뿐 아니라, 고기와 채소를 함께 즐기는 한식의 장점을 그대로 드러내 요즘 K-푸드의 인기에도 한몫하고 있다. 고기만 주문하면 깨끗한 생채소를 추가 금액 없이 수북하게 주고, 부족하다면 다시 채워주는 쌈 식문화가 웰빙 문화를 타고 자연스레 각광받고 있는 것.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종의 쌈 요리인 보쌈.



쌈이 한식만의 고유한 문화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외국에서도 더러 쌈과 유사한 원리의 음식을 발견할 수 있다. 쌈(Ssam)이 아닌 랩(wrap)에 가까운 멕시코의 부리토(burritos)는 옥수수 전병인 토르티야에 채소와 치즈, 고기 등을 넣고 둘둘 말아 먹는 일종의 ‘전병 쌈’이다. 볶은 돼지고기나 닭고기, 콩, 채소, 화끈하게 매운 소스까지 넣어 먹으면 맛의 조화가 우리네 쌈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생채소에 싸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 현지 식당에 가면 너도나도 마주 앉아 열심히 토르티야를 말고 있는 풍경이 쌈밥집과 유사하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멕시코의 쌈 요리인 ‘타코끼리’의 부리토.



베트남의 쌀 전병 구이인 반 쌔오(Banh xeo)는 상추와 고수 등 생채소에 싸 먹는다. 그대로 쌈을 싸는 것은 아니고, 생채소 겉으로 라이스페이퍼를 둘둘 말아 롤에 가까운 형태다. 돼지고기 꼬치구이, 쌀국수 등까지 올리면 그 느낌이 우리 쌈과 더 비슷해진다. 주방에서 말아서 내오는 경우도 있는데 현지에선 직접 싸서 먹을 때도 많다. 이를 본 한국인들은 ‘베트남의 쌈 문화’라 느꼈을 것. 그래서 예전에 반 꾸온, 넴 루이, 고이 꾸온 등을 모두 ‘월남쌈’이라 불렀다. 참고로 고이 꾸온의 ‘고이’는 생채소, ‘꾸온’은 말이(Roll)를 의미한다.

태국에도 잎사귀에 새우와 땅콩, 소스 등을 싸서 먹는 ‘미앙 깜’ 같은 쌈 요리가 있다. 튀르키예와 그리스 등 지중해 요리에도 포도나무 잎사귀에 쌀과 고기를 ‘싸는’ 돌마, 사르마 등이 있는데, 생채소가 아니라 다시 한 번 쪄내는 방식이라 우리 연잎밥 같은 느낌이 든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덕막회’의 과메기.



쌈의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우리나라에도 최근 다양한 쌈이 등장하며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일반적인 쌈이 아니라 조금은 생소한 것만 열거해도 많다. 냉면 가락을 구운 고기로 싸 먹는 ‘육쌈’, 날치알을 덜어 땅콩버터와 함께 날 김에 싸 먹는 날치알쌈, 고등어쌈밥, 멸치쌈밥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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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이상 주문을 받는 곳이 많았는데, 요즘은 1인 쌈밥집도 유행하고 있다.

나른한 봄볕에 산과 들에 푸성귀가 지천으로 나니 괜스레 쌈을 한번 싸고 싶다. 구수한 강된장 한 뚝배기라도 앞에 놓으면 손이 근질근질하다. ‘쌈 싸 먹는다’는 말이 여러 용도로 쓰이는데, ‘봄을 싸 먹는다’는 것은 아마도 오랜만에 도래한 새로운 계절을 제대로 만끽한다는 뜻이리라.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쌈 싸먹는 국밥 = 궁물촌. 소고기 국밥을 싸 먹는 게 아니라 국밥에 푸짐하게 든 고기를 건져 싸 먹는다. 건더기가 듬뿍 들었다. 국물에 밥을 말기 전 소고기만 건져서 배추에 쌈 싸 먹는다. 의외로 고깃덩이가 커서 아삭한 배추쌈과 잘 어울린다. 고기를 그 정도 넣었으니 국물맛은 또 어떤가.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곰탕을 주문해도 쌈이 같이 나온다. 포항시 남구 중섬로 22. 1만1000원.

◇김밥쌈 = 진미집. 돼지불고기를 파는 노포다. 상차림에 김밥이 나오는데 돼지불고기와 함께 쌈을 싸 먹으면 맛이 좋다. 가만 보면 이 집에선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김밥쌈을 먹는다. 김밥에 든 다양한 재료가 한 쌈에 섞여든 덕분인지 일반 밥쌈보다 더욱 풍성한 맛을 낸다. 금방 부들부들 구워낸 돼지고기는 강한 양념이 아니라 끝까지 질리지 않고 맛깔나게 들어간다. 전주시 완산구 노송여울2길 106. 1만2000원.

◇과메기 미역쌈 = 영덕막회. 이제 과메기를 맛보지 않는다면 기나긴 겨울을 보내기 다소 아쉬울 테다. 상호처럼 막회로 유명한 집인데 현지에서 존득한 과메기를 가져다 판다. 생미역과 다시마 등 갖은 해조류에다 생마늘, 마늘종, 쪽파 등을 함께 싸서 먹도록 차려준다. 과메기와 제철 해조류가 만난 쌈의 조합도 입에 착착 붙는다. 생미역의 매끈한 식감이 아삭한 쪽파와도 잘 맞는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33. 3만2000원.

◇옛날보리밥 = 원조옛날보리밥. 보리밥을 한상차림으로 파는 집. 당연히 쌈채가 깔린다. 의왕시 보리밥 골목에 있어 모락산 등반객이 많이 찾는다. 보리밥에 다양한 나물 찬을 취향대로 올려 쓱쓱 비빈 후 쌈채와 함께 밥쌈으로 먹으면 입에서부터 봄이 시작된다. 제육볶음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계절에 따라 쌈채는 달라지지만 요즘 나오는 여린 순이 부드럽다. 의왕시 손골길 17. 1만 원.

◇열무쌈 = 배진강. 돼지 석쇠구이 골목으로 유명한 강진군 병영면에서 유명한 집. 연탄에 초벌한 돼지불고기에 푸짐한 반찬과 쌈을 함께 내준다. 때에 따라 상추, 머위, 깻잎 등을 달리 내는데 초여름엔 열무이파리 쌈에 싸 먹는다. 신선한 열무 잎은 아삭한 식감에 싱그러운 맛을 내는 덕에 돼지고기 풍미에 깔끔한 뒷맛을 선사한다.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07-16. 2만5000원(2인분).

◇부리토 = 타코끼리. 부리토는 쌈채 대신 옥수수 전병(토르티야)에 싸 먹는 쌈이다. 한입에 꿀꺽 먹지 못할 만큼 크다는 것도 차이점. 직접 올려 먹기도 하지만 만들어서 내주는 경우가 많다. 고기와 채소, 소스 등 여러 재료를 넣는데 밥을 넣어 먹는다는 점이 밥쌈과 유사하다. 텍스멕스(텍사스 스타일 멕시칸 요리) 전문점으로 타코와 엔칠라다, 치미창가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15길 13. 1만1000원(런치).

◇반쌔오 = 흐엉관. 채소 좋아하기로 한국인 버금가는 베트남 식문화. 베트남식 쌀 전병인 반쌔오는 숙주와 대파 등 채소를 넓게 부친 일종의 파전이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쌈으로 먹는다. 반짱(쌀종이)을 물에 적셔 손에 올리고 상추 등 채소와 바삭한 반쌔오를 올린 후 매콤한 소스를 곁들여 둘둘 말아 싸먹는다. 이른바 월남쌈의 한 종류다. 흐엉관은 베트남인이 직접 운영하는 쌀국수 전문점이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2길 17 2층.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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