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글과 삶의 이면

“나, 내맘이 가을 하늘 반공중에 솟은 달같이 밝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분한 일이지, 더러운 골목에 썩은 찌꺼기를 다퉈 먹는 청삽사리 홍삽사리가 짖거나 말거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달보고 짖는 개라고, 온세상의 강아지로 하여금 다 나와서라도 짖으라 하라. 짖는 개를 미워하는 마음이 털끝 만큼도 있는 달이 아니요….”

“말이란 들을 수 있을 만큼 가슴이 익어야 한다. 민중이라는 이름의 혜가(慧可)여, 전통의 줄을 못 놓는 보수주의와 타협하려는 너의 팔뚝을 끊어가지고 오라. 그럼 우리가 말하리라.”

윤형중 신부와 논쟁을 주고받은 함석헌의 글은 통쾌하기 그지없다. ‘힘있고 건강한 문장’의 모델인 그의 글은 우리 근현대 문장사에 단연 이채를 이룬다. 엉터리 번역어투의 글과 달리 토종 문장이 함석헌의 구어체 글이다. 소설가 이호철은 이를 ‘분칠과 겉치레가 홍수를 이루는 속에서 핫바지 저고리 차림의 시골장돌뱅이 글 같은 신선함’이라 했다. 예기치 않은 독설도 함석헌 글의 장기이다.

“속엔 양갈보 치마보다 더 얼룩덜룩한 세상을 꿈꾸면서 겉으로는 아니 그런 체 (신부 목사의) 검은 예복을 입고….” “제발 세례 요한이 옵시사! 와서 그때의 맑은 요단 강물을 휘뿌렸던 것 같이 이 걸쭉한 청계천 구정물이라도 떠서 끼얹어 줍시사! 미친 연놈의 자동차에 뿌려줍시사.” 특유의 단문도 글맛을 돋우지만, 때론 엄청 긴 문장이 판소리의 호흡으로 흘러가는 대목은 소리내 읽어야 제맛이 난다. 그런가 하면 그는 시도 썼다. 10년전 한길사에서 나온 ‘함석헌 전집’(전 20권)의 한권인 ‘수평선 너머’가 53년에 나온 유일한 시집. 기독교 도그마를 버린 첫 계기이기도 한 이 시집을 두고 시인 신경림이 ‘큰 장사는 잔기술이 없어도 씨름에 이기는 법’이라면서 이미지 메타포 따위를 무시한 그의 시의 진정성에 최대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문학·비문학의 장르 구분을 떠나 분명 당대의 문장가로 재평가될 함석헌은 평소에도 독설로 유명했다. “어디 이승만 때려 죽이는 젊은 놈 없어?” 50년대 서울 청계천의 판잣집에서 노장을 강연했던 그는 모여 있는 젊은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반면 실제 일상의 함석헌은 놀랍게도 그는 ‘유달리 부끄럼을 많이 타는 잘 생긴 노인’의 모습이었다. 예전 화신백화점 맞은 편의 ‘사상계’ 사무실에 간혹 모습을 비친 그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다는 것이 사람들의 증언이다. 그의 몸에 밴 고독을 가리켜 ‘범용한 소시민과 지사(志士)마음의 거리’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소 석연치 않은 대목도 없지 않다. 60녀대 초·중반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간통사건이 불거진 일도 있지만, 그것이 일과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외조카 조순명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실제의 함석헌이 적지 않은 여성들을 회유했다고 증언한다. 조순명은 이런 사실을 ‘거짓 예언자’ ‘함석헌과 한국지성들’ 등의 단행본에서 밝히고 있다. 함석헌 주변의 대다수 인사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도 눈을 감아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