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을사늑약(勒約)’으로 바로잡자

외교통상부가 내년 1월 한·일회담 교섭회의록을 포함한 65년 한·일협정 문서 5건을 공개하기로 28일 최종결정했다. 그런데 과거를 바로잡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측면에서는 해결해야 할 사안이 또하나 있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 및 이른바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의 불법성 문제다. 2차 협약은 대다수 국민들이 학교에서 ‘을사보호조약’으로 배웠던 그 조약이다.

65년 회담 당시 양국은 이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으나 끝내 의견대립이 해소되지 못했다. 우리는 “무력시위 앞에서 강압에 못이겨 체결됐으므로 원천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일본은 열강제국의 양해하에 합법적으로 체결됐다고 맞서 아직 미결상태다.

새삼스레 2차협약을 거론하는 이유는 일본과 불법성 규정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라도 내부에서 우선적으로 정리돼야 할 사안이 있기 때문이다. 입에 붙은 대로 ‘을사보호조약’으로 표기할 게 아니라 ‘을사늑약(乙巳勒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보호’라는 단어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철희 교수의 지적대로 “대동아공영이라는 일본적 시각의 식민사관”의 맥락에서 쓰인 것이다. 고종도 이 단어를 단호히 거부했다. 고종은 1905~6년 미국 등 9개국 국가원수에게 보내는 친서에서 “이 조약은 위협과 강제에 의한 ‘늑약’”이라고 표현한 뒤 “황제로서 조약체결을 허락한 사실이 없고 정부대신들을 강제로 가둔 채 이뤄진 회의이므로 불법, 무효이다”고 밝혔다.

‘勒’은 굴레라는 뜻으로 강제와 법률적 무효의 의미가 담겨있다.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 을사늑약으로 표기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는 등 변화는 시작됐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는 않다. 일본의 역사왜곡교과서를 비판하는 일부 단체의 경우도 아직 ‘보호조약’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년은 을사늑약 100주년이 되는 해로 각종 관련 행사가 즐비하다. 우리부터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로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jup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