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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게재 일자 : 2008년 03월 29일(土)
“전례없어 어렵다는 현대음악, 난 그 자유가 좋아”
소프라노 김 인 혜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사진=박상문기자 moonpark@munhwa.com
소프라노 서울대 김인혜(47) 교수가 요즘 국내외 무대에서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5일 유럽 최고 수준의 클래식 음악축제로 평가되는 폴란드 베토벤이스터페스티벌 개막공연서 세계 초연한 류재준씨의 ‘정주영 레퀴엠’을 노래했고, 4월1일 시작하는 국내 최대 교향악 페스티벌인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개막공연인 헨릭 구레츠키의 3번 교향곡의 솔리스트 소프라노로 무대에도 선다. 또 10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 무대에 오르는 한·중·러 합작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를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류역을 맡았다. 분초를 쪼개 사는 김 교수를 28일 만났다.

언제 봐도 ‘건강미’가 넘친다. 소프라노 가운데도 힘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리코 스핀토(lyrico spinto·서정적이고 강한 소프라노)답다. 분명 칭찬이었는데 살짝 옆으로 흘겨보면서 “이것이 전부 근육”이라고 강조하며 파안대소 한다.

“무대에서 힘을 내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벨칸토의 핵심은 역시 힘이에요. 그런데 제가 조금만 운동하면 근육이 남자처럼 붙는 근육질 체질이어서 운동도 마음대로 못해요.”

사실 클래식이나 팝이나 가수는 노래로 승부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어디나 외모 중심이다. ‘건강한’ 몸에서 터져 나오는 시원한 통소리 벨칸토를 들을 수 없게 된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김 교수 역시 이에 동의하며 “‘정주영 레퀴엠’을 부르러 바르샤바에 가기 전 모교(줄리어드)에 들려 조언을 구하면서 틈을 내 메트로폴리탄에서 르네 플레밍을 봤는데 너무 살을 빼서 그런지 목소리가 안 나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근육질’ 김 교수가 ‘터미네이터’가 되는 것을 피해 선택한 운동은 자전거 타기. 탄천에서 한번에 1시간30분에서 2시간씩 이틀에 한번 꼴로 탄다고 한다.

“성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근육은 복근입니다. 전신운동도 하면서 복근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전거 타기 만한 운동이 없습니다.”

그런 체력이 1시간 분량 대곡인 ‘정주영 레퀴엠’에서 처음 부터 끝까지 무대를 지키며 40분 가까이 홀로 노래를 하며 이끌어간 힘의 원동력이 됐나 보다.

“‘정주영 레퀴엠’은 테크닉적으로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몇 가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 다니엘 페로, 말레나 말라스 등 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말라스는 ‘너무 어렵다. 성악적 테크닉으로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절대로 (소리를) 세이브해(아껴)라’고 조언했고, 페로는 ‘이거 하다간 죽겠다. 목 다치지 않게 정말 조심하고 조심해라’고 충고했을 정도입니다.”

음악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좀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모두 4악장으로 끝까지 크레센도(점점 강하게) 되는데 엄청나요. 1악장은 고요합니다. 2악장에서 점점 업(up·상승)되지요. 3악장에서 괴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뿜어져 나오는 힘 자체로 표현해야 되거든요. 4악장은 결론인데 환희와 희망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김 교수는 “레퀴엠이지만 너무 강하고 희망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 같지는 않다”고 했다.

“힌데미트의 5번 교향곡이 강하기로 유명하잖아요. 이 곡은 더 하더라구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그렇게 파워풀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코러스까지 있지요. 과연 어떤 소프라노가 이 소리들을 뚫고 나올 수 있느냐고 모두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폴란드 라디오오케스트라, 라디오합창단의 강력한 소리를 뚫고 성경 시편의 평안과 희망의 메시지를 객석에 분명히 전했다. 작곡가 류재준씨와 이를 믿을 수 없는 에너지로 승화시킨 김 교수가 공연을 끝내고 무대로 올라왔을 때 관객들은 현대음악 연주회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기립박수를 보냈다. 기립박수가 10여분간 계속돼 다음 행사를 위해 주최측이 끊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우수한 청중이라도 라틴어로 된 가사를 이해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몇 년전 펜데레츠키의 작품을 그분의 지휘로 노래했었을 때 맨처음 듣고 싶어하시던 것이 바로 텍스트의 딕션(diction·발음)이었습니다. 지금도 신라호텔에 가서 그분께 직접 텍스트를 검사(?)받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작품이 ‘스트로펜(Strophen)’이었는데 완전히 아방가르드면서도 텍스트가 무려 고대 페르시안에 히브리어, 라틴어 세 가지 언어가 들어있었어요. 성악곡의 가장 중요점은 텍스트를 어떻게 풀어나가며 음악을 전달하는가에 달려있지요.”

정확히 언어의 내용을 모른다고 해도 ‘귀있는 자’는 분명히 알아들었을 것이라는 것, 또 성경의 시편인 만큼 몇 단어만 알아들어도 각 국어로 번역된 내용이 충분히 머리에서 떠오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노래 내용에 대해 “세속의 고통에 울부짖으며 구원의 빛을 줘 구원을 얻게 해 달라, 음부의 권세에서 생명의 권세로 옮겨가게 해달라는 등의 내용”이라고 요약했다.

셰익스피어는 극을 쓸 때 배우를 정해놓고 쓴다. 류재준씨도 ‘정주영 레퀴엠’을 쓸 때 이 노래를 부를 소프라노로 김 교수를 염두에 뒀다. 강력한 힘과 서정성 등 음악성도 이유겠지만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정 회장이 가장 좋아했던 소프라노가 그였다는 말도 있다.

“유학하고 막 돌아왔을 어름이니까 1994년쯤일 거예요. 정 회장님 팔순잔치에 초청을 받았어요. 노래를 했는데 한국 사람들 그런 경향 있잖아요. 열심히 노래 시켜놓고 듣지 않는 거요. 박수도 별로 안치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 마디 쏘아붙였지요. 그랬더니 고 정세영 회장님이 ‘김 교수 거 미안합네다. 박수치라’하니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께 앙코르가 쏟아지더군요. 그때 강부자 선생님도 나와서 노래하고, 회장님도 한 곡조 뽑으셨지요. 그때부터 정 회장님이 제 팬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 많은 활동을 했는데 최근 더 활발한 것 같다. 2006년 국립오페라 ‘투란도트’, ‘오텔로’, ‘카르멘’에 이어 지난해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 ‘알렉코’, 서울시오페라단의 ‘카발레리아 루스티까나’ ‘가면무도회’, 베세토오페라단의 ‘아이다’ 등 그가 등장하지 않는 오페라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비결이 궁금했다. 김 교수는 “비결은 없다”며 “아마 언제든, 무슨 작품이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도전정신, 기동성이 뛰어난 전천후이기 때문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확실히 전천후다. 인기 정상의 소프라노로서 위험부담이 있는 현대음악에 대한 도전이 쉽지 않은데 세계 초연, 아시아 초연 등에 대한 도전의지가 남다르다. ‘열린음악회’에 즐겨 출연, 대중지향적인 소프라노라는 일부로 부터 질시어린 비판을 받는 성악가 답지 않은 측면이기도 하다.

“현대음악을 처음 들으면 ‘이게 무슨 음악이야’하는 사람도 많지요. 또 어떤 분은 전례가 없는 것이어서 어렵다고도 하지만 저는 전례가 없어 좋아요. 기준이 없으니 제가 기준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특히 현대음악에는 모든 스타일이 존재하고 또 아무 거리낌없이 접근할 수 있어요. 자유로운 느낌, 그런 것 있잖아요. 그래서 흥분되기도 해요.”

이번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개막 공연인 헨릭 구레츠키의 3번 교향곡의 소프라노 출연에서도 그런 흥분감을 느끼는 듯했다.

“교향악축제에 지금까지 모두 4번 솔로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번이 가장 기대됩니다. 평생 꼭 한 번은 하고 싶었던 구레츠키의 곡이 거든요. 이 곡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입니다. 이 곡은 영화음악에 쓰여서 세계적으로 음반이 100만장 이상 팔리고 미국의 클래식빌보드에서 연속 23주 동안 1위를 했었던 곡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음악이지요. 정말 생각만해도 떨려옵니다. 잘할 수 있을까 하고요.”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영향으로 한국 클래식 시장은 최근 활황을 맞고 있다. 그런데 오페라 시장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불로 한국 오페라 60주년이 상당히 빛바랜 느낌이다.

“오페라는 순수예술의 얼굴입니다. 국립오페라단, 서울시립오페라단 등이 수준높은 작품으로 한국 오페라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습니다. 관립단체가 정부와 지자체의 강력한 지원으로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오히려 민간단체를 어렵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빈약한 자본으로 관립단체와 경쟁하기 어렵게 된 겁니다.”

김 교수는 “민간 오페라단이 한국 오페라 발전에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다”며 사립오페라단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촉구했다.

“일본을 보면 우리가 보입니다. 일본도 민간 오페라가 중심이었는데 경제가 발전하면서 외국의 유명 오페라가 몰려오면서 지금은 후지와라와 니키카이 오페라 두 개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 달리 세계적으로 좋은 성악가들이 많습니다. 일본의 실패까지 답습할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만 지원하면 오페라를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는 “미국 뉴욕 필, 프랑스 바스티유오페라, 오스트리아 비엔나 필하모닉을 보라”며 “한 나라의 힘, 한 도시의 수준, 그것은 바로 그것을 대표하는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라고 강조했다. 일류국가의 진정한 경쟁력은 순수예술의 수준이라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음악이, 클래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서 결국 음악인들이 무대에 서는 것에 막힘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페라가 세계적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예술적으로, 상업적으로 꽃을 피우게 되면 얼마나 놀라울까요. 그것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고,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김인혜 교수는…

▲1961년 서울 출생 ▲1980년 풍문여고 졸업 ▲1984년 서울대 음대 졸업 ▲1984년 미국 줄리어드 입학, 1988년 석사학위, 1993년 박사학위 취득 ▲1994~1998년 숙명여대 교수 ▲1998년 이후 서울대 교수 ▲영국로열필, 오스트리아 모짜르트오케스트라, 폴란드쇼팽오케스트라. 체코필, 크로아티아 쟈그레브필, 볼쇼이오페라오케스트라, 모스크바국립교향악단, 바르샤바방송교향악단 등과 협연 ▲프랑스 쇼메사와 한국음협 선정 2006 아티스트 어워드, 난파 음악상 등 수상 ▲음반 ‘그리움이 하나되어’ ‘강건너봄이 오듯’ ‘로망스’ ‘Amazing Grace’ ‘My First Dream’ 등

문화부장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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