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연정책 진심일까, 위선일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까마득한 옛날을 뜻하는 말이다. 담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우기 시작한 것은 400년이 채 안 됐다. 조선조 광해군 시절인 1616년에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기호식품이 담배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담배가 들어온 후 보급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라는 게 이 책의 설명이다. 17세기 후반 쯤에 남녀노소와 귀천을 막론하고 담배를 애용하는 상황이 되다보니까 옛날에는 호랑이도 피웠으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상인 헨드릭 하멜이 쓴 ‘하멜 표류기’는 “현재 그들(조선인들)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해 어린아이들이 4, 5세 때 이미 배우기 시작하며, 남녀 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적고 있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기록한 내용이라 과장됐을 수는 있지만, 담배 연기가 조선사회를 뿌옇게 만들고 있는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강준만(신문방송학) 전북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담배와 흡연의 문화 변천사를 살피고 있다. 각종 문헌과 미디어가 담고 있는 담배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들을 찾아내 통사적으로 엮으면서 국가 권력이 세수(稅收)를 위해 흡연을 조장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담배의 원래 생산지였던 서양에서의 흡연 문화도 함께 소개함으로써 정치 권력과 담배 회사의 은밀한 유착 관계가 세계에 보편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책에 따르면, 담배는 한국 영화의 역사와도 무관치 않다. 1897년부터 1903년 사이에 ‘영미연초회사’가 담배 판촉을 위해 활동사진을 보여줬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9년 12월 궁내부 내장원에 삼정과(參政課)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담배사업에 나섰다. 1905년 국내 첫 궐련 담배인 ‘이글’이 생산된다. 이후 우리나라 정부는 ‘양담배’와 오랜 전쟁을 벌인다. 양담배에 맞서 국산 담배를 판매함으로써 세수를 증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이 된 후에 우리 정부는 담배를 전매청을 통해 생산했으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제와 외제 담배를 고급 사치품으로 여기며 선호하는 경향이 여전했다. 1955년 우리 정부는 ‘국민내핍운동’을 전개하면서 “양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지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역시 세수 때문이었다.

1986년 담배 시장 개방 뒤에도 양담배 피우는 일을 매국 행위처럼 취급하는 분위기가 지속됐다. 전매청을 이은 한국담배인삼공사의 국산 담배 장려책과 양담배 회사들의 판촉 활동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면서 국민의 흡연율을 오히려 끌어올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담배의 해악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하면서 금연 열풍이 불었다. 한국에서도 관련 운동 단체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정부도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국민들에게 금연을 권하며 국민 건강을 ‘위하는 척’했다.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타계 직전에 복지부 홍보대사로서 자신의 폐암이 흡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금연 캠페인을 벌인 것은 자신의 진심을 담은 것이지만, 담배와 정부의 세수 관계를 따져볼 땐 하나의 블랙 코미디였다. 이 책의 끝부분은 정부가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담배 없는 세상’도 요원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