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물가고통…유류세부터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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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현/연세대 상경대 교수·경제학

추석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치솟는 물가 때문에 서민들의 근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구제역으로 인해 급등했던 돼지고기 등 축산물 가격은 떨어질 줄 모르고, 여름 내내 비가 내리면서 과일 및 채소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앞으로 유제품 가격도 상승할 것이다. 소비자물가의 선행지수라 할 수 있는 생산자물가가 7월중 6.5% 오르면서 연간 물가상승률이 한국은행이 목표로 잡은 4%를 훨씬 웃돌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다 8월부터 전기요금이 평균 5%가량 인상되면서 기업의 원가 부담도 커지고 있다. 또 경기회복 부진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정부의 물가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한국은행은 두 달째 기준금리를 3.25%로 동결했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의 긴축정책 등 대외 불안요소가 많아 쉽사리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연초 정부의 목표는 연간 경제성장률 5% 달성, 물가상승률 3% 유지였다. 그러나 반년 만에 경제성장률은 4.5%로 하향 조정한 반면 물가상승률은 4%로 상향 조정했다. 저성장을 동반하는 고물가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한국경제가 지난해의 경기 회복세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게 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각국도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은 경기회복 후 다시 침체에 빠져드는 더블딥 공포와 과도한 정부 재정적자로 인한 디폴트 우려로 홍역을 앓았으며 중국은 물가상승률이 지난 37개월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도 경제성장률 목표를 대폭 하향 수정하는 등 경기침체와 물가불안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물가안정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방법은 조세정책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가고에 시달리는 국민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감세에 나서야 한다. 당초 이달 말에 나오게 될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세원은 넓히고 세율은 낮춘다는 기조 아래 법인세와 소득세를 감면하는 방향의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그런데 최근 세계 각국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여파 때문인지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2013년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서는 지출은 줄이고 세수를 늘려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 언급은 기존의 감세정책을 철회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지출을 줄이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에서 빠져 나오려면 경제 주체의 조세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당장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대책 중 하나로 유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제 유류 에너지는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품이다. 기름 가격이 산업 및 생활경제에 전방위적인 파급력을 미치는 것을 감안한다면 유류의 소비자 가격 중 절반에 이르는 유류세를 내려 물가 상승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단 유류세뿐만 아니라 서민 경제에 영향을 주는 조세 감면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은 예산 낭비를 줄이고 탈세가 만연한 부문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징수가 쉽다는 이유로 생필품이나 다름없는 유류 에너지에 대한 세금을 낮추려 하지 않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기업들의 팔을 비틀면서 가격을 안정시키라고 강요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유류세를 낮추면서 물가안정에 솔선수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