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 녹스 항소심서 ‘무죄’… 4년만에 풀려났다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이탈리아 페루자 법정에서 영화같은 반전드라마가 연출됐다.

영국인 룸메이트 여대생 메레디스 커처(2007년 당시 21세)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2009년 26년형을 선고받았던 미국 여성 아만다 녹스(24)는 3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순간, 변호사의 가슴에 쓰러질듯 안기며 눈물을 쏟았다. 검찰측으로부터 ‘사악하기 짝이없는 팜므 파탈’‘섹스광’으로 지목됐던 녹스는 일순간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순진한 여대생’이 됐다. 반면 방청석에 앉은 커처의 어머니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법정 안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동안, 밖에서는 수백명이 “수치스러운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이탈리아 안사통신, AFP, BBC 등이 보도했다.

녹스는 2007년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재학중 교환학생으로 페루자에 왔다가 같은해 11월 룸메이트 커처를 살해한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커처는 자신의 방에서 목이 거의 잘린 반나체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녹스가 커처에게 애인 라파엘 솔레시토, 또다른 용의자였던 코트디부아르 출신 루디 구데 등 4명이 함께 성관계를 가질 것을 요구했다가 싸움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커처가 살해된 것으로 결론내렸다.

경찰은 녹스의 애인인 솔레시토의 방에서 찾아낸 칼자루와 칼날에서 녹스와 커처의 디옥시리보핵산(DNA)을, 커처의 브래지어에서는 솔레시토의 DNA를 채취했다고 밝혔다.

또 녹스가 평소 마약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으며, 커처 사망후 체포되기 전 며칠 동안 솔레시토와 함께 아무일 없다는 듯 쇼핑을 다니는 등 ‘악마 같은 본성’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2년 뒤 1심은 녹스에게 26년형, 솔레시토에게는 25년형을 선고했으며 구데에게 30년형을 선고했다. 이중 구데는 항소심에서 16년형으로 감형된 상태다. 그러나 녹스와 솔레시토는 구데가 살인을 저질렀으며 자신들은 무죄라고 주장해왔다.

항소심 배심원단이 녹스와 솔레시토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DNA 때문이었다. 경찰이 DNA를 채취한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됐고, 특히 사건발생 이후 무려 40여일이나 지나서야 채취했다는 점에서 샘플이 오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가 배심원단의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항소심 재판부는 술집 주인 디야 패트릭 루뭄바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녹스의 명예훼손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1심의 유죄 판결을 유지했다.

그러나 녹스는 명예훼손 혐의에 따른 3년의 형기를 이미 채운 상태다. 검찰이 대법원에 항소하더라도 이탈리아법상 녹스는 언제든 출국할 자유가 있다. 녹스는 이날 무죄판결을 받은 지 90분쯤 지나 검은색 벤츠승용차를 타고 교도소를 나와 모처로 향했다. 4일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로마로 향한 것으로 외신들은 추정했다. 한편 커처의 가족들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재판에서 메레디스는 잊어졌다”며 판결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