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대한민국 國會의 9년째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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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원/연세대 상경대 교수 경제학

2012년 예산안 심사가 결국 법정처리시한인 2일을 넘기고 말았다. 이제 여야는 정기국회 회기 내인 9일까지 처리할 것이냐, 아니면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할 것이냐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특히 야당은 여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에 대한 사과를 전제조건으로 예산안 심사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정치적 갈등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예산안 심사만큼은 여야가 정치적 입장보다는 민생의 측면에서 조속히 처리하기를 촉구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민생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상태임을 모든 정치인이 알고 있을 것이다. 기존의 양극화 사회구조가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더욱 악화했으며,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정부 예산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이유로 예산안 심의에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민생을 챙겨야 하는 국회의원의 본분을 저버리는 행위다.

일각에서는 설사 지금부터 심의를 한다고 해도 방대한 예산을 모두 심사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이는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며, 필자 역시 시간에 쫓겨 졸속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 역시 따지고 보면 국회의원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비했으며, 더욱이 그 여파로 야당은 계수조정소위원회 참여를 거부하면서 또다시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법정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시간을 끌었다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자신들이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 어린 학생들도 숙제가 밀리면 밤을 새워서라도 정해진 기일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 상식임을 알고 있다. 더욱이 이번 예산안에는 한미 FTA와 관련된 예산도 포함돼 있는 만큼 야당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심사에 참여해야 한다.

일단 새해 예산안 심사가 재개되면 많은 쟁점이 있겠지만, 다행인 것은 과거와 달리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만한 요소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특히 2012년 예산안 가운데서 가장 큰 쟁점인 복지예산의 측면에서는 여야가 이미 한 배를 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여야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종 복지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 복지예산만 놓고 보면 여야는 ‘복지 포퓰리즘’의 무한팽창을 우려하는 언론과 학자들의 목소리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복지 강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에 무조건적인 호응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은 분위기라면 각론만 조정하면 여야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예산안 심사를 무리해서라도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하기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2003년 이후 지금까지 기한 내에 처리하지 못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만일 올해까지 예산안 처리가 파행된다면 이 같은 악순환은 9년째 연속되게 된다. 이는 지극히 나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며,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될수록 결국 국민이 정치인들에게 거는 기대와 신뢰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제라도 여야는 예산안 심사에 매진해야 한다. 만일 첨예한 쟁점이 생긴다면 원내대표들 간에 대타협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또 시간이 부족하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심사해야 한다. 민생을 위해 그와 같은 노력을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본분을 다하는 최소한의 의무가 될 것이며, 그것만이 ‘최루탄 국회’라는 오명을 조금이나마 씻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