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中 ‘탈북자 = 불법이민자’요지부동… 9년간 10만여명 강제북송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가 2만명을 훌쩍 넘어섰지만, 아직도 살얼음판 압록강을 건너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탈북자 수만명이 중국 땅을 헤매고 있다. 이들에게는 ‘추위’와 ‘배고픔’도 적이지만, 언제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중국 공안은 공포 그 자체다. ‘강제북송’되면 고문이 성행하는 ‘수용소’행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탈북자 30여명이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언제 북한으로 송환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에서 이들을 구하자는 릴레이 시위가 이어지고 정부도 공개적으로 중국에 협조를 요청하고 나섰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 탈북자는 누구인가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에 따르면 탈북자는 “북한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자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자”다. 헌법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1997년 이 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남측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은 ‘월남귀순용사’였는데, 1990년대 중반 북한 식량난으로 월경하는 북한 주민이 급증하면서 명칭도 ‘탈북자’로 바뀌었다.

중국 국경지대가 주요 탈북통로인데, 북·중 당국의 허가 없이 월경하다보니 정확한 탈북자 통계는 없다. 다만 1990년대 후반 30만명 가까이로 정점을 이뤘다가 최근 감소세이며, 중국내 탈북자는 최소 1만명에서 최대 5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지난 1월까지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는 총 2만3260명이다.

2. 강제북송되는 탈북자 규모

운 좋게 한국행 티켓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 공안당국에 걸려 강제북송되는 탈북자도 상당수다. 중국 사회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1998∼2006년 중국은 매년 적게는 4800여명, 많게는 8900여명의 탈북자를 북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기간에 대략 10만명 안팎이 강제로 북송됐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3성에서 체포된 경우가 많으며, 대개는 지역 구류소에 감금됐다가 최종 집결지인 북·중 국경지역의 투먼(圖們) 변방구류소로 이송된 뒤 북측에 넘겨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집행절차와 강제북송 규모는 중국 당국이 확인해주지 않기 때문에 파악이 쉽지 않다. 현재 알려진 강제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는 3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 수용돼 있는지는 확인이 어렵다. 일각에서는 옌지(延吉), 선양(瀋陽) 등에 최대 80명이 억류된 채 북송을 기다리고 있다는 첩보도 들린다.

3. 강제북송되면 어떤 처벌 받나

북송된 탈북자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1차 조사를 받는다. 이들은 1차 조사를 통해 ▲중국 친척집에 머문 ‘불법월경자’ ▲장사나 밀수거래를 한 ‘밀수자’ ▲남한행을 시도한 ‘월남도주자’ 등으로 분류된다. 한국행을 시도하거나 남측 인사와 접촉한 ‘월남도주자’는 가장 중한 ‘1급 정치범’으로 취급되며, 보위부 제7국이 직접 관할하는 악명높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지는 중형을 받는다. 일부는 공개총살형을 당하기도 한다.

정치범 수용소는 뮤지컬 ‘요덕 스토리’로 잘 알려진 함남 요덕(15호)과 평남 개천(14호)·북창(18호), 함북 화성(16호)·청진(25호)·회령(22호) 등 총 6곳으로, 약 15만명이 수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용소에서는 고문과 강제노동, 강제낙태, 영아살해 등 가혹한 인권유린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4. 탈북자는 난민인가

이같은 북한 당국의 인권유린 때문에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제1조는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출신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출신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출신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자 또는 출신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자’를 난민으로 규정하는데, 탈북자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 같은 협약 제33조1항에서 ‘체약국은 난민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에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그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강제송환금지 원칙’도 규정하고 있다.

중국도 1982년 9월 협약에 가입한 만큼, 준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협약 난민’이 아니더라도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승인받은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일반 관행에 따른 ‘위임난민’으로도 인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5. ‘북송 = 고문방지협약 위반’ 주장

탈북자 강제북송은 난민협약뿐 아니라 ‘고문 및 그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이하 고문방지협약)’ 위반이라는 의견도 많다.

이 협약 제3조는 ‘어떠한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송환 또는 인도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상이 난민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난민지위협약보다 적용대상이 더 넓으며, ‘고문’ 외에도 기타 학대행위(ill-treatment)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탈북자 역시 협약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주변국 중에서 강제북송 원칙을 거의 유일하게 고수하고 있는 중국도 이 협약에 1988년10월 가입했다. 북·중 양자조약이 있더라도 국제법상 강행규범인 고문금지 및 관련 강제송환금지에 반하는 내용이라면 원천적으로 무효이며, 협정의 강제송환금지원칙이 우선한다는 해석이 대체적이다.

6. 중국은 왜 강제북송시키나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난민’이 아닌 ‘경제적 이민(economic migrants)’,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있다. 표현도 ‘탈북자’ 대신에 ‘조선(북한)불법입경자’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조선인들 가운데 일부는 반복적으로 여러차례 국경을 넘고 있으며, 10차례에 달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그들은 경제문제를 해결하려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고 있으며, 난민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중국은 또 “국내법, 국제법,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관련문제를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는 국제사회가 이해하는 개념과는 다소 다르다. 중국이 밝힌 국제법은 북한과 맺은 ‘조·중(북·중) 탈주자 및 범죄인 상호인도협정’(1960년)과 ‘변경지역 국가안전 및 사회질서를 위한 의정서’(1986년) 등이다.

이 조약에서 양측 정부는 허가를 받지 않고 국경을 넘어온 주민은 송환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는 북·중 동맹관계에 대한 배려, 탈북자 급증에 따른 국경지대 혼란 및 향후 급변사태시 대응 등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7. 단속 강화하는 북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이 발표된 직후 김정은 노동당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탈북자는 조국의 배신한 무리다. 탈북자가 발생하면 3족(族)을 멸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접경 지역에서 월경 행위가 적발될 경우 즉시 사살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또 지난해 해안을 통한 탈북이 늘면서 ‘동·서해로 쪽배(전마선, 목선)를 타고 나가는 것을 발견하면 즉시 사격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조치들은 김 위원장 체제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어서 김 부위원장 체제 성립 후 단속이 훨씬 강화됐음을 보여준다. 김 부위원장은 아버지인 김 위원장을 괴롭힌 주범으로 탈북자를 지목하고 있어 이를 통제하고 조치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8. 탈북자 북송 저지 노력

남한에 거주 중인 탈북자의 가족이나 탈북 브로커들로부터 탈북자들의 체포·억류 등의 정보를 입수한 대북인권단체들은 이들의 강제 북송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하며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중국대사관 앞 시위 등을 주도하고 있다.

탤런트 차인표씨 등을 비롯한 연예인 20여명도 지난 2월21일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를 호소하며 시위에 동참하는 등 민간단체의 시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치인으로는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항의 표시로 같은 날부터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탈북자 강제북송 중지촉구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민간단체의 탈북자 강제북송 저지 시위는 이제 부산으로까지 확대된 상황이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와 부산기독교사회책임 등 100여개 시민사회, 종교단체로 구성된 ‘탈북 동포 강제북송반대 부산시민연대’ 회원 500여명은 2월29일 부산 중국영사관 앞에서 탈북 동포 강제북송 중단 촉구대회를 열었다.

9. 정부 정책은 뭐가 있나

중국에 억류된 탈북자의 신병 처리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향도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탈북자 억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비공개로 선처를 요청하던 ‘조용한 외교’가 정부의 대처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제법에 근거해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중국의 강제북송 자제를 촉구하며 ‘공개외교’로 전환한 것이다.

정부 입장이 이처럼 달라진 이유는 조용한 외교를 통한 양자협상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중국은 198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탈북자에 대해선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탈북자 체포 여부를 외교부나 현지 공관에 확인해주는 것조차 비협조로 나오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중국의 국제법 준수 의무를 지적하고 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의 ‘강제 추방 또는 송환 금지’ 조항 등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10. 美·EU 등 국제사회 동참

미국 워싱턴 현지에서도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의회 산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Congressional-Executive Commission on China)는 오는 5일 중국의 탈북자 북송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한다.

청문회에는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로버타 코헨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이 증언하는 것 외에 중국에서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된 적이 있는 탈북자들이 겪은 북한 당국의 박해에 대해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독일과 유럽연합(EU)을 방문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중국 내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EU의 관심과 지지를 약속받았다. 2월27일 독일을 방문중이던 류 장관이 한·독의원친선협회 소속 의원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탈북자 북송 문제를 언급하자 독일 의원들은 “독일과 EU는 필요하다면 의회 차원에서 한국 입장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신보영·박준희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