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유언따라 떠나는 남매… 조금씩 밝혀지는 비극적 운명

올해초 국내 개봉돼 호평을 받은 영화 ‘그을린 사랑’이 연극무대에 오른다. 6월5일부터 7월1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그을린 사랑’은 중동 국가에서 내전에 휘말린 한 여성의 참혹한 삶과 운명을 그린 수작(秀作)이다.

우리에겐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으로 먼저 알려졌지만, 원작은 레바논 태생 캐나다 작가 겸 연출가인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이다. 빌뇌브 감독 역시 연극 ‘그을린 사랑’을 보고 그 강렬함에 매료돼 영화화를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야기는 쌍둥이 남매 시몽과 잔느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듣기 위해 공증인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공증인으로부터 어머니가 쓴 두 통의 편지를 받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형제와 사망한 것으로 알아온 아버지에게 편지를 각각 전달하라는 유언이었다. 당황한 두 남매는 결국 어머니의 유언대로 두 통의 편지를 들고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엄청난 비극이 빚어졌던 어머니의 과거가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연극은 과거의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일어났던 사건들을 관객에게 순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거나 자주 겹치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한 무대에서 만난다. 즉 연극은,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교차되면서 미스터리로 가득한 어머니 나왈의 삶, 그리고 인간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그을린 사랑’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의 모티프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한다’는 신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이 정해준 운명 속에서 무기력한 인간들의 어두운 진실을 이야기하는 ‘오이디푸스’와는 달리 ‘그을린 사랑’은 비극적 운명을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와 달리 연극은 시적 언어의 강렬함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김동현 씨는 “영화 ‘그을린 사랑’이 공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면 연극은 오로지 ‘말의 힘’으로 상황을 보여주고, 진실을 파헤친다”며 “연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머니 나왈 역을 세 명의 배우가 각각 연령대별로 맡았다”고 밝혔다.

나왈 역의 이연규·배해선·이다아야를 비롯, 남명렬·백익남·이윤재·박성연·김주완·전박찬·이진희 등 출연. 1644-2003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