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企業 R&D 투자, 일자리로 이어져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병태/KAIST 경영대학장

최근에 한국의 간판 제조업들이 연구·개발(R&D) 투자를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R&D 인력이 전체 종업원의 45%를 넘어서고 R&D 투자금액에서도 상위 기업(企業)에 이르렀다. 전자산업뿐 아니라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한 제조업과 협력 중소기업의 R&D 투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상품의 수출에서 세계 3위의 국가이고, 이미 특허출원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수위권에 든다.

간판 제조업과 협력업체의 R&D 투자는 모방경제를 지나 이제 혁신으로 경쟁을 하는 기업으로서는 필연적인 전략적 선택이다. 최근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에서 볼 수 있듯이 고유의 기술이 없으면 첨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우리 기업들이 기술 중심으로 변신하는 주요 동인(動因)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술 투자가 우리의 시급한 경제 현안, 즉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저성장 탈출의 기폭제가 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수출의 고용유발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반적인 편견과는 달리 우리 기업들은 국제화 정도에서 아직도 뒤처져 있다. 기업의 글로벌화를 측정하는 초국가지수(Transnationality index)를 보면 일본의 소니는 자산의 74%, 고용의 64%를 외국에서 보유, 활용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이 지수에서 세계 71위로 고용과 자산의 과반을 국내에 두고 있다. 이는 간판 기업들이 고용의 창출과 자산의 보유를 해외로 이전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R&D 투자는 경제의 불쏘시개일 뿐이다. 개발된 기술이 사업화하고 제조되고 유통이 국내에서 이뤄져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친기업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려되는 것은 지금의 경제민주화 바람은 기업의 사업화 현장을 해외로 내몰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용과 해고의 비용은 나날이 증가하는 쪽으로, 시장의 경쟁이 아니라 규제에 의한 시장 개편의 시도는 높아가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은 연구소에서의 혁신 경쟁이 아니라 법정 경쟁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으로 경제민주화 이념을 촉발한 미국 등 유럽 국가들은 벌률적으로 시장의 규범에 개입하는 입법 활동에 조심스럽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이와 정반대로 과감하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이후에 관세를 피해 해외에 나간 기업의 유(U)턴 정책에 기업들이 반응을 하지 않고, 국내 기업들은 계속 해외에 공장을 짓고 있다. 이 현실을 외면하는 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보다 심각한 것은 국민의 70%가 종사하는 서비스 산업의 혁신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규제로 인해 대부분 국내 시장이 없거나 혁신 투자에 대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단 1주의 주식도 없는 정부에 의해 대표적 서비스업인 통신과 금융 등에 정권교체 때마다 권력에 줄을 댄 최고경영자가 부임한다. 지분 이상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재벌보다 정부가 더하다. 5년을 기약할 수 없는 최고경영자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는 전력 경영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공기업이었지만 안정된 지배구조와 리더십이 있었던 포스코의 성공 사례가 시사하는 바를 정치권과 정부는 무시하고 있다.

보다 근원적으로 1980년대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경험하고 대학의 이공계 비중이 6% 이하로 떨어진 미국이 이제 통한의 후회를 하는 것이 제조업의 기반인 기술·과학 인력의 부족이다. 원천기술이 탐구되는 고등교육 기피가 지속되면 기업들은 제조는 물론 머잖아 R&D마저 인도와 중국 등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