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한수 교수가 서울 양천구 이화여대목동병원 진료실에서 한 여성 환자의 목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보건의료계에는 연구개발(R&D)이 오랜 기간 화두다. 웰빙 시대에 접어들면서 신의료기술과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제약사는 물론, 대형병원들은 저마다 R&D 센터를 설치하고 새로운 치료기술, 신약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정부도 연구중심병원을 지정해 연구를 잘하는 병원을 지원하고, 대기업들도 보건의료를 융합한 산업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혁신적인 기술은 연구자의 끊임없는 노력으로부터 나온다. 그 노력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명의’나 세계적 석학들만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인 다나카 고이치(田中 耕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연구를 수행한 사람들에게서도 세상을 바꾸는 신기술은 끊임없이 나온다. 문화일보는 음지에서 신의료기술, 신약 개발 연구에 매진 중인, 알려지지 않은 연구인들을 찾아 그들의 연구성과를 조명할 계획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20년 정도 후면 줄기세포 치료가 본격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한수 이화여대 목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전망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편도선 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줄기세포 연구 자체가 어려운 데다, 편도선 줄기세포는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지는 않는 분야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교수는 묵묵히 큰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줄기세포부터 물어봤다. “줄기세포는 공급원에 따라 분류됩니다. 윤리문제로 잘 알려진 수정된 배아에서 추출하는 배아줄기세포, 그리고 사람의 골수나 지방 등에서 채취하는 성체줄기세포, 그리고 그 태반에서 추출하는 제대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각 공급원에서 채취된 줄기세포를 인체 각 신경, 조직, 장기 등으로 분화시켜 인체 내 손상된 부위를 치료하는 것이 줄기세포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줄기세포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확보해야 한다. 많이 확보해야 분화 원리를 밝히고 분화된 줄기세포를 인체에 투여해 성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황우석 박사 사건 이후 배아줄기세포 추출은 금지돼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성체줄기세포와 제대혈이다. 그러나 성체줄기세포는 공여자에게 전신마취를 한 상태에서 외과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채취과정에서의 고통이 엄청나다. 또 제대혈로부터 얻는 줄기세포의 양은 평균적으로 180㎖에 불과하다. 치료에 활용될 수 있는 줄기세포의 양이 평균적으로 1800㎖ 정도인 것을 계산하면 턱없이 적다. 최근 생리혈, 사랑니 등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기도 하지만,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위생적 문제 등이 있다.
그때 김 교수는 편도선을 떠올렸다. 그는 “몇 년 전에 대구에서 열린 학회를 다녀오다가 갑자기 편도선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어 소아청소년과, 분자의학과, 미생물학과 교수님께 아이디어를 냈고, 모두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어요. 각자 1000만 원씩의 연구비를 갹출해 연구를 시작했는데, 결과가 엄청났습니다.”
이비인후과 교수로서 우리나라에서 연간 4만 건의 편도선 절제수술이 진행되는 것에 착안, 수술 후 버려지는 편도선 조직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연구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편도선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는데, 1명의 편도선(목 양측 2개)에서 추출한 양이 골수조직에서 2시간 동안 채취해야 얻을 수 있는 줄기세포 양이었다. 김 교수는 “연간 편도선 절제수술이 4만 건이니, 연간 8만 개의 편도조직이 버려지는 것”이라며 “그 편도선에서 추출할 수 있는 양은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추출할 수 있는 줄기세포의 양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편도선 줄기세포는 계대배양(세포 증식을 위해 새로운 배양접시에 옮겨 세포의 대(代)를 계속 이어서 배양하는 방법) 기간도 38시간으로 골수줄기세포의 58시간보다 짧았다. 또 줄기세포를 냉동시켰다가 녹여서 냉동시키지 않은 것과 비교한 결과에서도 성능이 같았고, 다른 사람의 편도조직과 혼합해도 문제가 없었다. 또 성체줄기세포는 주로 골수와 지방 등으로 분화하는 중배엽으로의 분화에 한계가 있었지만, 편도선 줄기세포는 중배엽 외에 내분비기관과 장기로 분화가 가능한 내배엽 조직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연구팀이 모두 처음에 이 결과를 얻었을 때, 실험을 잘못한 것일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같은 방법으로 다시 해보니 결과는 같았습니다. 그렇게 10번을 반복했는데도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십수 편의 연구논문을 국제학회에 게재했다. 전 세계 편도선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논문은 80%가 김 교수팀의 연구다. 해당 추출방법에 대한 국제특허도 등록됐다.
그는 “얼마 전 라이트형제가 첫 동력비행에 성공했던 미국의 킬데빌힐스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1903년 당시 라이트형제의 비행은 많은 비웃음을 받았지만, 그로부터 60여 년 뒤에 인류는 달에 착륙했습니다. 줄기세포도 멀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의과학의 발달속도라면 가까운 미래에 줄기세포 치료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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