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국회 獨裁’ 경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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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국제정치학

최근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시행령 수정·요구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우리나라의 정치 체제가 ‘국회 독재(獨裁)’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과거 한국 정치는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행정부가 국회를 시녀(侍女)로 만든 ‘행정부 독재’를 경험했다. 1987년 6·10항쟁과 6·29선언이라는 대타협을 통해서 이룩한 ‘제1의 민주화’는 행정부 중심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탈피해 행정부와 국회, 사법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 아래서 ‘3권 분립 체제’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그러나 최근 국회법 개정을 통해 행정부를 좌지우지하고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국정 운영을 왜곡하며 심지어 무력화하려는 국회의 행태는 ‘국회 독재’의 위험에 대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국회 독재’(elective despotism)라는 ‘정치학적 개념’은 미국 정치의 주요 문건으로 꼽히는 ‘연방주의자 논고’ 제48번에 나온다. 이것은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이 쓴 개념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지고 미국 의회로 권력이 집중되는 정치 체제의 타락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됐다. 그는 미국 헌법을 만들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의 남용을 자제하고 3권 분립 체제를 유지해 ‘국회 독재’와 같은 ‘체제 타락’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3권 분립상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자유와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더욱이 3권 분립은 이것을 역이용해 국회가 권력을 독점하고 남용하는 ‘국회 독재’로 나가는 제도적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 게 아니다.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국회가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국정의 균형을 잡아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3권 분립이 헌법에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고 실제로 작동해 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국회는 자신들이 가진 돈주머니를 마음대로 열어서 포퓰리즘으로 나가고, 국민이 투표에 의해 만들어준 여야 의석 분포를 무시하고 ‘동물 국회’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켜 입법 과정을 왜곡하더니, 급기야 국회법 개정을 통해 헌법이 명시한 3권 분립의 정신을 훼손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대통령은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당연히 ‘거부권’(veto)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된 국회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두고 여야 정치권이 마치 정치적 파국이 일어날 것처럼 정치 상황을 호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해 정치가 파국으로 간다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아직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책임은 정치권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또한, 국회법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청와대와 여당의 협조 체제 붕괴는 국가 통치 위기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고 청와대 정무 기능 회복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국민의 ‘지역구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모인 국회가 ‘국회 독재’의 방향으로 빗나가서 ‘체제 타락’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면, 국민의 ‘전국구 대표’인 대통령이 이런 타락의 심화를 방관만 할 게 아니라 적극 막아야 한다. 필요한 경우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요구이고, 3권 분립의 정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소통이 대통령이 가진 ‘설득 권력’의 중요한 행사 방식 가운데 하나이고 정치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하고 ‘국회 독재’의 위험성에 대해 국민에게 기자회견을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설명해 나가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투표가 끝나고 나면 노예가 되고 만다”고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국회법 개정을 둘러싸고 메르스 사태와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오늘날 한국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무기력함과 분노의 심정을 이처럼 잘 표현한 말도 드물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희생을 통해서 이룩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국회 독재’라는 체제 타락의 늪으로 빠지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2의 민주화’를 위한 이론적 성찰과 실천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