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차기 대통령 자질과 4차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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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석 고려대 교수·행정학

대한민국의 차기 제19대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임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17년은 그동안 우리가 우려해 왔음에도 미리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위기(危機)의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해가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차기 정부는 개혁 정부여야 한다. 위기에는 정책 수준의 것과 전체 시스템 수준의 것이 있다. 전체 시스템 수준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기본적 자원의 부족, 획기적 기술 변화, 경제 체제의 지속 가능성 상실, 사회 신념 체계의 변화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내외 환경에 이러한 큰 변화가 동시 다발로 일어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로 부양인구는 늘어나는데, 이를 책임질 젊은 노동력 자원은 크게 줄었다. 또, 지난 20년 동안 심해진 경제적 양극화의 적폐가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으로 나타나서 국민의 사기를 누르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4차 산업혁명이란 시대사적 기술 변화가 우리의 목전에 찾아왔다. 다보스포럼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적응 능력은 139개국 가운데 25위다. 일본은 12위이고 대만도 16위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63%가 자동화에 밀려날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대입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이 117명이다. 사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이른바 일류 대학에 진학하려면 거의 모든 수능 과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얻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5∼6개 과목의 그 많은 문제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맞히나? 완벽화의 게임, 그리고 동질화 게임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반복(反復)과 완벽(完璧)이 아니라, 상상(想像)과 창의(創意)가 있다. 반복과 완벽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대신한다. 일정한 양의 지식을 던져 놓고, 만점 받기를 요구하는 식의 교육으론 미래를 열어갈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정말 큰 문제는 상상과 창의를 구속하는 모습이 대학입시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민간 규제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서, 그리고 아랫사람·소수자·여성 등에 대한 불평등 대우에도 모두 그 모습이 투영돼 나타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류가 발전시켜온 기계공학 기술,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 데이터 기술, 생물학 기술 등이 모두 융합하며 나타나고 있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다. 그런 만큼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변화는 심대하고 또 오래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 변화는 국가 시스템 수준의 위기이자 기회다. 수십 년 주기의 기술 변화 때마다 대규모 기술 변화를 제도 개혁으로 뒷받침했던 나라들은 올라섰고, 그러지 못한 나라들은 내려앉았다. 증기 기술과 유한책임회사의 영국, 포드주의적 대량생산과 존 케인스식 완전고용 경제의 미국, ICT 혁명에 부적응했던 일본 등이 그 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 개혁의 경험이 있다. ICT 혁명이 태동하던 1994년 말 김영삼 정권은 당시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개편하고, 곧이어 정보화촉진기본법과 정보화촉진기금을 설치해 정보화 정책이라는, 그 전에는 없던 새로운 정책 영역을 창설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은 사이버코리아21 계획으로 국가사회의 전반적인 정보화를 추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김대중 정권이 추진했던 공공부문 등 4대 개혁, 사회안전망 구축,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등도 대한민국 혁신 유전자(DNA)의 일부가 된 대표적인 거시 개혁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보다 없어지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을 막거나 게을리해서 국민경제 전체를 더 주저앉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4차 산업혁명에 앞서가면서도, 재분배를 강화하고 패자 부활(敗者復活)의 기회를 확대해가는 정부의 역량이다.

4차 산업혁명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을 대폭 개편해야 하고, 불필요하거나 불공평한 규제를 개혁하고, 국정의 투명성과 경제정의를 확보해 국가 사회의 곳곳에 그리고 국민 개개인에게 창의와 상상의 기운이 넘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다음에 들어설 정부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개혁의 요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