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외교안보에도 ‘공감’이 필수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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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아랍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 잠정중지명령으로 미국이 떠들썩하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데 국민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 여파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상원의 임명동의 표결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반대표를 받았다. 여전히 조용한 41%가 찬성하는 가운데 행정명령은 연방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이번에 여행이 제한된 7개국을 비자면제 프로그램에서 제외하기로 먼저 논의한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의 일인데 그때는 조용하다가 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일까.

과거엔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든 외교·안보는 국익만 추구하면 됐다. 이 때문에 정책의 효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어려운 선발시험과 현장 경험으로 단련된 엘리트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런데 민주화와 탈냉전, 세계화와 더불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까지 보급되면서 외교·안보와 국익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복잡한 외교·안보 정책이 음모론과 민족주의, 이념논쟁에 중독된 눈으로 단순해지고 왜곡된 채 정보의 홍수 속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가기도 하고 우리 외교·안보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비판받기도 한다.

외교·안보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이들 덕에 테러를 겪지 않아도 됐고 북한의 대한민국을 향한 도발도 주춤했다. 눈을 부릅뜨고 적을 응시하는 이도 있고, 하루에 몇 번씩 사선을 넘나드는 이도 있으며, 미국의 전략무기를 불러오느라 협상에 밤을 지새우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국익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노고를 폄훼하거나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다만, 이들에게 능력 지상주의가 지배하던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싶다. 잘나가던 프로야구 선수가 슬럼프에 빠져 잊어지는 것은, 단지 성적 저하뿐만 아니라 팬들과의 유대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질적 풍요만큼 자긍심과 정신적 행복을 중시하는 시대엔 국민의 마음과 믿음을 얻지 못한 정책은 동력을 잃기 십상이다.

이미 시작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정책 효율성을 위해 전략을 짜는 일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당할 수 없게 된다. 한 분야의 정책적 ‘효율성’ 못지않게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책적 ‘효과’도 중요해지면서 집단지성으로서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한 과정 또한 중요해질 것이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중국의 인구를 능가했고, 트위터 사용자도 인구 2위국 인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그만큼 소통의 대상과 속도, 방법이 혁명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해 관련국 국민과의 소통과 공감 역시 정책의 성패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사용하면서도 이런 시대적 변화를 못 읽어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대에 직면한 것이다.

우리의 사드(THAAD) 배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북한의 핵 위협 때문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사드를 바라본다. 이 때문에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통일 이후의 외교 구도에 대한 국민적 공감도 필요했고, 중국과의 교역에 미칠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리스크 관리 등을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나 수출업자들의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도 필요했다. 사드 배치는 우리 업무가 맞지만 그로 인한 중국과의 무역 문제는 우리 소관이 아니어서 우리가 고려할 사항도, 책임질 사항도 아니니 통상 관련 부서에 문의해 달라는 식으론 국민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만의 능력인 공감과 친화력이 더욱더 중요해진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받는 건 생전에 그가 개발한 기술과 도전정신을 소비자의 마음에 딱 맞는 디자인에 담아 넣었기 때문이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랑받는 건 자신의 정책을 국민의 믿음으로 포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직업의 반 이상이 20년도 채 안 돼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된다는데, 지금처럼 정책의 효율성만 따지고 국민의 공감을 외면한다면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직업도 어찌 될지 염려된다. 이제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실력과 능력 외에 공감 소통 능력을 갖춰야 효과적으로 국익을 추구할 수 있고, 국민의 안전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