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규제가 ‘유니콘 기업’ 싹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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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연세대 교수·경영학

‘유니콘(Unicorn) 기업’이란 아직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았지만 기업 가치를 10억 달러(1조1400억 원) 이상 평가받는 벤처기업을 의미한다. 유니콘이란,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말처럼 생긴 전설상의 동물이다. 스타트업 기업이 증권시장에 상장하기도 전에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이 되는 것은 마치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용어다. 하지만 최근의 4차 산업혁명은 유니콘 기업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만들고 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유니콘 기업은 186개로 지난 2014년에 비하면 4배 이상 증가했다. 포천 500대 기업이 시가총액 10억 달러에 도달하는 데 평균 20년 이상이 걸린 데 비해 유니콘 기업들은 평균 6년 이내에 10억 달러 클럽에 들었다. 이들 유니콘 기업 가운데 14개는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11조4000억 원)를 넘어서 ‘데카콘(Decacorn) 기업’으로 불린다. 데카콘은 머리에 뿔이 10개 달린 역시 상상 속의 동물이다.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이 10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달성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벤처기업이 현실화하면서 유니콘 경제가 미래 먹거리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 유니콘 기업 186개 가운데 76%가 미국(99개)과 중국(42개) 기업인 데 비해 한국 기업은 3개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중국의 경우 2012년 3개에 불과하던 유니콘 기업이 5년 만에 14배나 늘었다. 지난해에 신규로 등록된 유니콘 기업 41개 가운데 30%인 12개가 중국 기업이다. 중국의 유니콘 경제에 비하면 한국은 너무 초라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 경제는 성장판이 너무 일찍 닫히는 ‘성장판 조기 폐쇄(閉鎖)’에 직면하고 있다. 수년째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대, 연 2%대 성장에 갇혀 있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 ‘패스트 팔로’ 성장 모델이 수명을 다하고 주력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창의적 혁신’을 통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고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낡은 정부 규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유니콘 기업의 등장을 어렵게 하고 있다. 유니콘 상위 100개 기업 가운데 57개가 한국에서는 불법이거나 규제에 발목이 잡혀 성장하기 어려운 기업들이다. 공유경제 기업이 유니콘 상위 10개 가운데 40%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 기업이 아직도 불법이다.

중국 내 400개 이상의 도시에서 4억 명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디추싱(滴滴出行)의 기업 가치가 500억 달러(56조2500억 원)를 넘어서면서 설립 4년 만에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기업으로 성장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미국과 중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원격진료는 의료법과 약사법에 가로막혀 10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드론 규제가 거의 없는 중국이 DJI 등을 앞세워 세계 드론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항공안전법과 항공사업법 등 각종 규제 때문에 드론의 무게에 따라 사전 신고나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자유로운 개발이 어렵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의 60%가 전통산업에 IT를 융합한 서비스 기업들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융복합 서비스는 과거 전통적인 산업 분류의 틀에 맞지도 않고, 낡은 사업 인허가 요건을 충족하기도 어렵다. 사전에 인허가를 받아야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현 ‘포지티브 규제’로는 자율 주행차, 드론, 3D 프린팅 등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정부의 규제 시스템을,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 외에는 모두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바꿔 신규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 신규 서비스는 ‘선(先) 허용, 후(後) 보완’ 방식으로 규제를 적용해야 역동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는 국내 공유경제 관련 벤처기업가가 규제와 관련해 외치는 다음의 절규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서비스 분야에서 우리는 과거의 칼로 미래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칼이 항상 미래를 이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