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한민국 미래 리포트>‘노사대립病’ 오명 네덜란드… 임금동결·일자리나누기 합의로 ‘회복’

- 노사정대타협 선례는

韓,98년 구조조정·임금체계개편
외환위기 조기 극복 원동력으로

지난 1959년 북해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전을 발견하며 승승장구했던 네덜란드는 1980년대 들어 급격한 물가와 임금 상승으로 경쟁력을 잃고 경제 침체에 빠졌다. 침체의 원인은 과도한 복지지출로 인한 정부 재정적자 급증이었다. 상황이 악화함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연 5~15%에 이르는 높은 임금 인상을 주장했다. 기업은 신규채용 기피로 대응했다. 실업률은 12%까지 치솟았고, 청년실업률은 30%를 웃돌았다. 네덜란드처럼 천연자원 발견으로 일시적 호황을 누리던 국가가 물가 상승이나 환율 하락의 부작용으로 장기적 경기 침체를 겪는 현상은 ‘네덜란드 병’이란 이름을 얻었다. 치료까지는 20년 이상 걸렸다. 이 과정에서 노동유연성을 높인 네덜란드 정부는 1993년부터 최저임금제를 시간제 근로자에게도 적용하고, 임금·연장근로수당·휴일급여 등의 고용조건을 전일제 근로와 동등하게 하는 ‘근로시간에 따른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는 등 고용 보호도 강화했다.

◇‘네덜란드 병’ 치료한 노사정대타협 = 지난 1982년에 집권한 뤼트 뤼버르스 총리는 ‘네덜란드 병’이란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사정대타협을 시도했다. 힘든 논의 끝에 △임금 인상 자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분배를 통한 고용 창출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 78개 사항을 담은 ‘바세나르 협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협약에 따라 네덜란드는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하고, 시간제 고용 확대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식을 도입했다. 네덜란드의 임금은 1983년과 1997년 사이에 33% 증가에 그쳤다. 같은 기간 독일의 임금은 75% 증가했다. 임금 안정은 실질환율의 하락 효과를 가져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줘 대외의존도가 높은 네덜란드의 경제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4.4%로, 유로존(유럽연합에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 회원국) 평균 실업률(8.7%)의 절반에 불과했다. 1980년 54.5%이던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2016년 74.0%까지 상승했다. 시간제 근로자 비율은 2014년 기준 3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유럽연합(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청년(20~24세) 실업률은 6.9%로 EU 28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외환위기 극복 후 한계 남긴 노사정대타협 = 지난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빠져 있던 한국 경제를 부활시킨 원동력은 노사정대타협이었다. 1997년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사정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노사정위원회를 꾸렸다. 1998년 1월 대통령자문기구로 출발한 노사정위는 같은 해 2월 6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이뤄내는 성과를 거뒀다. 협약 내용은 △정리해고 △핵심사업 위주의 기업 구조조정 △임금체계 개편 △부동산 세제 개혁 △규제 완화 △기업 부담 경감 등 주요 현안을 망라한다. 노사정대타협은 외환위기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노사정대타협은 현안마다 적지 않은 파열음을 냈다. 1999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파견근로제 도입에 반대하며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이후 ‘반쪽’ 기구로 전락한 노사정위는 지난 2016년 한국노총이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를 허용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양대지침 강행 처리와 파견업종 확대 등을 반대하며 탈퇴 선언을 함으로써 개점 휴업상태가 됐다가 지난달 말에야 가까스로 대화의 불씨를 살린 상황이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