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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時評 게재 일자 : 2018년 05월 29일(火)
‘위장된 북핵 폐기’로 흐를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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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비핵화 협상 탈선 가능성 여전
정상회담 들떠 현실 검증 소홀
진실의 순간 앞두고 한계 절감

善意와 진정성은 희망에 불과
미·북 현실적 타협 가능성 커
한국 ‘핵심 이익’ 침해 없어야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정상회담 개최 날짜와 장소가 공표된 이후에 갑자기 취소됐다가 또 하루도 지나지 않아 회담 재개가 탐색되는 사례는 정상회담 역사상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반도의 운명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세기적인 미·북 간의 정상회담이란 열차가 출발도 하기 전에 고장 난 롤러코스터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처럼 한순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난폭 시운전을 보면서 과연 이 열차가 약속대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목적지에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 정상 궤도에서 이탈해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에 우리를 내동댕이치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반전 드라마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작은 위안이 된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이번 반전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현실의 냉엄한 검증 필요성을 재확인하게 됐다. 그동안 우리는 미·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와 그 상징성에 들떠서 성공을 담보할 조건에 대한 냉정한 현실 검증 작업을 소홀히 해왔다. 현실의 한계를 외면하면서 각자가 자신들의 욕망과 목표만 내세우는 데 급급하다가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자 현실 조건과 한계에 충격을 받았고, 그런 충격을 경험하면서 각자의 최대 목표를 조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논쟁에는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개념과 가정이 많다. 이를테면, 비핵화 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선의’와 ‘진정성’의 문제라든지, ‘완전한 비핵화’(CVID)와 체제 보장 같은 문제들은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이고 희망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증명하기가 어렵다. 정글의 법칙이 판을 치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선의나 진정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리고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불확정적인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CVID나 ‘완전한 체제 보장’을 장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고민도 없이 쉽게 주장하고 약속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신기루 같은 가상현실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반전 소동을 통해 모두 상대방의 실체를 좀 더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됐고, 그동안 주장하고 약속했던 CVID와 체제 보장에 대해서도 현실의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과연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고, 무엇까지 얻어낼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번 경험을 통해 북한은 리비아가 아니며, 북한이 CVID에 합의한다 해도 일괄타결 방식으로 간단히 집행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위험스러운 과정이란 현실의 한계를 인식했을 것이다. 김정은 역시 북한의 고전적인 ‘벼랑 끝 전술’이 더는 트럼프의 미국에 통하지 않고, CVID를 약속하지 않고는 협상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는 현실의 조건에 직면해 CVID로 포장하면서도 핵 동결의 수준을 지켜낼 수 있는 묘책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과정에서 양측의 선의와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시종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물론 중재자의 입장에서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가 있겠지만, 우리는 중재자인 동시에 핵심 이해 당사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우리의 핵심 이익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돌이켜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인 반전 드라마를 통해 아마추어 외교의 위험성과 철저한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됐고, 뒤늦게나마 실무 전문가들이 나서서 본격적인 정상회담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실무 전문가가 각자 최대 및 최소 목표를 재검토하면서 미국과 남북한이 추구하는 비핵화라는 목표의 교집합을 찾을 수 있어야 역사적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북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 성공 여부는 결국 핵무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보검(寶劍)’이라고 믿고 있는 북한 내부의 강경 세력들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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