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노파와 마녀는 여성의 근본적인 추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로 미술에서 묘사됐다. 그 초상 뒤에는 남성과 여성 간의 권력이 뒤바뀔지 모른다는 남성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19세기 초 그려진 프란시스코 고야의 ‘시간’. 자료사진
- 못생긴 여자의 역사 / 클로딘느 사게르 지음, 김미진 옮김 / 호밀밭
古·中·近代의 철학자·시인
“여자는 불완전하고 무능력
예쁘고 매력적인걸로 충분”
현대에도 ‘추함=잘못’ 여전
인격·재능 외모앞에선 무력
제도적 남녀평등 허상 비판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등장하는 ‘질료’와 ‘형상’은 서양철학에서 주요한 개념이다. 질료는 불완전하고 추하며, 형상은 완전하고 아름답다. 질료는 여성, 형상은 남성에 견주어진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추함에 질료를, 질료에 여성을 연결짓고, 아름다움의 기본조건인 형상을 남성에 연결한다. 그는 ‘물리학’에서 “암컷은 수컷을 욕망하고, 추함은 아름다움을 욕망한다. 질료는 욕망을 품는다”고 썼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여자는 의도와는 다르게 태어난 불완전한 존재다”라고 했으니, 고대·중세 철학의 ‘대가’들이 동일한 입장이었던 셈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는 “추함은 일종의 결함으로, 도덕적 열등함과 정치적인 무능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며 ‘여성=추함’을 ‘부도덕·무능력’과 등치했다. ‘여성／질료, 남성／형상, 아름다움／추함’의 이분법적 도식은 신화, 철학, 종교를 망라해 반복됐으니, ‘여성=추함’의 사고는 뿌리가 넓고도 깊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양상만 변했을 뿐 본질은 지속된다. 근래 한국을 포함한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미투(Me Too) 열풍’을 발생시킨 근저에도 ‘여성=추함’의 오랜 뿌리가 작동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여성들 자신이 성형과 다이어트로 자신의 몸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도 이와 직접 맞닿아 있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해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남성의 사고와 태도, 여성 자신이 남성의 시선에 포획돼 아름다워지고자 자신의 몸과 전쟁을 치르는 그 뿌리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프랑스의 여성 사회학자이며 철학자가 쓴 이 책은 미셸 푸코의 ‘고고학적 방법론’과 남성권력이 미시적으로 작동해온 담론의 분석을 통해 ‘못생긴 여성’의 역사적 뿌리를 탐색한다.
중세에 시인과 예술가들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칭송했지만, 그들은 외양을 찬미하면서도 그 아래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끔찍한 추녀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근대까지도 단지 여성의 몸이 숭고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은 결혼과 임신, 즉 재생산 덕분이다. 여성의 개념에 변화가 일어났어도 그것은 ‘사회의 규율에 부합하는’ 여성의 기질을 생리학적으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데 불과했다. ‘부합하지 않는’ 독립적 여성은 마치 중세의 마녀처럼 취급된다. 심지어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여자는 고차원적인 지식이 없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쁘고 매력적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이성의 빛이 비치던 계몽의 시대에도 그 평등의 대상에 여성을 포함시키려는 철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남성들의 무의식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개인주의가 탄생하며 여성 자체를 추하게 보는 시각은 힘을 잃었지만, 그 대신 추함은 여성 개개인의 추함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강력한 타자의 시선 속에서 몸의 문제가 된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추함은 자기관리 소홀, 무절제, 심지어 부도덕함을 의미한다. 현대에 이르러 여성이 열등하다고 주장했다가는 큰코다칠 분위기가 됐지만, 미디어와 광고의 발달 속에서 역설적으로 여성의 몸은 더욱 중요해지며, 추한 신체는 결점이자 잘못, 심지어 죄가 된다. 이제 개인은 자신의 몸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볼품없는 외모는 곧 개인의 실패이며 잘못이다. 인격, 경력으로 쌓아 올린 여성의 평판은 외모 앞에서 무력하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여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한에서만 아름다워 보일 수 있었다. 지난한 투쟁의 역사 덕분에 적어도 20세기 서구사회에서 제도적인 남녀평등이 구현됐지만, 외모의 영역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하다. 여성이 타인의 시선의 피해자이면서도 그 비난을 내면화하고, 자신을 보고 추하다고 손가락질하는 타인보다 더 신랄하게 스스로 손가락질한다. 남성의 무의식을 치유하고, 또 여성들 스스로 이 같은 시선의 폭력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탈출구이겠지만, 쉽지만은 않다. 책의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저자는 “여성에게 못생길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미셸 투르니에의 시 구절로 결론을 대신한다. 364쪽, 1만 58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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