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대학의 위기, 국가 미래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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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사회정책학

서울대 총장 空白 장기화 조짐
利害 흥정式 선출 방식이 문제
비전과 역량 중심으로 바꿔야

교육 수요 감소에 경쟁력 흔들
외양 달라도 모든 대학이 위기
서울大부터 과감한 개혁 나서야

대학 경쟁력이 10∼20년 뒤의 국가경쟁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서울대에 닥친 위기의 징후들을 보면 여간 심각하지 않다. 서울대가 위기라면 다른 대학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위기의 외양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글로벌 경쟁력의 측면에서 그 본질은 같다. 임기가 끝나는 성낙인 서울대 총장이 오늘 퇴임하지만, 후임을 선출하지 못해 앞으로 상당 기간 총장 부재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정책평가를 거쳐 이사회가 최종 후보에 오른 한 사람을 교육부에 추천했지만, 성희롱 의혹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최종 후보로 선출된 교수가 지난 6일 스스로 사퇴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한 마음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서울대는 교육과 연구에 있어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고 자부하지만, 그 위상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냉정한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욱이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교육 수요가 대폭 줄어들고, 정보기술(IT)과 동영상 등을 활용한 새로운 교육 방식이 확산됨에 따라 전통적인 대학교육 방식만으론 대학들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에서 서울대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서울대 모습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교육부총장의 임기를 연장해 행정 공백을 막고 있다. 시흥캠퍼스 추진이나 내년도 예산안 편성 등 대학 행정에 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이른 시일 내에 차기 총장을 선출하는 일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설령 선출한다 해도 직면한 위기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서울대는 지난 2011년 국립대학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법안이 졸속 통과되는 바람에 충분한 논의와 준비 없이 국립대학법인으로 출범하게 됐다. 법인화 이후 대학 운영 구조, 대학 자율성의 내용과 범위에 대한 분명한 이해(利害)나 대학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향 정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법인화가 시행된 것이다. 법인화 이후 7년 동안 서울대가 획기적으로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는 인식도 이런 방향성 결여에 기인한다.

한 가지 구체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에 문제가 된 총장 선임 제도다. 과거의 직선제 방식이 아니라, 최고 의결기관인 이사회가 총장추천회의 추천 후보 중에서 한 사람을 대통령에게 제청해 임명하는 제도다. 그런데 여기에 서울대의 교수·직원·학생들이 일정한 비율에 따라 참여하는 총장 후보 정책평가 제도가 덧붙여지게 됐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시킨다는 취지이나, 이로 인해 정말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가 돼 버렸다. 이렇다 보니 최종 후보자가 사퇴하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초래됐는지,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는지 가려낼 방법이 없다.

이처럼 복잡한 총장 선출 제도나, 이번 선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은 근본적 문제점과 맥을 같이한다. 서울대라는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교직원이 하나의 팀이 돼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보다는,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흥정하는 이해타산적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 비전과 능력을 갖춘 총장을 뽑기보다는 복잡한 구성원 간 이해관계의 타협점을 찾는 데 초점을 둔 제도가 만들어낸 불가피한 결과가 이번 총장 부재 사태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대학에 주어진 소명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수행할지 깊게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에 따라 과감한 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예전처럼 뛰어난 인재들이 앞다퉈 서울대로 몰려드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도 자신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치열한 노력과 변화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대학 구성원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 교육과 연구 지원 제도는 물론 총장 선출 제도와 이사회, 대학 집행부 등 대학 운영 구조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대적 혁신 없이는 대학도 발전할 수 없다. 그러면 나라의 미래도 없다. 이런 현실 앞에 서울대 구성원들이 먼저 답을 내놔야 하고, 국민은 회초리를 들고 감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