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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18년 08월 10일(金)
‘불평’이라는 상징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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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서강대 교수, 소설가

비평적 의식은 성숙해지면서 발달
그것은 쇄신·변화에 가장 큰 도움

비판·비난·불평은 수준 자체 달라
개인적 입장 담기고 동기도 불순

목소리 높여 기선 잡는 세상이지만
겸손하게 감사하며 살면 좀 어떨까


세상을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복 중의 복은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내가 준비가 안 돼 있을 때 만남은 무의미한 스침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좋은 만남은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그중에는 일생 지속돼 삶이 섞이는 만남도 있지만, 짧은 시간 만났음에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다.

그 만남의 복을 나도 누렸다. 드라마틱한 만남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만남은 어떤 형태로든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내 삶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잊지 못할 도움을 준 만남들도 있지만, 그 도움이라는 것을 협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말 거의 모든 만남은 우리가 삶을 잘 이끌어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만남에 나쁜 영향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는 상대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아 그런 경우가 더 빈번하다. 어찌 험하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만 골라서 만날 수 있겠는가.

모든 만남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감동의 만남들이다. 그런 감동적인 만남 가운데 하나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의 만남을 은퇴를 앞둔 요즘 들어 부쩍 생각한다.

국내의 한 문화재단이 주최한 국제문학대회에 부르디외가 초청받아 왔을 때, 그는 제자 부부와 동행하고 있었다. 그 제자 학자의 책에 어쩌다 나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기에 그 덕으로 노년의 부르디외를 개인적으로 두 번 정도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나는 사회학자로서 부르디외를 존경하고는 있었지만, 그의 사회학 이론에 감동했다기보다는 한 노학자가 삶을 대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짧은 한국 방문 동안 아시아의 문젯거리를 가지고 그의 고견을 듣고자 온, 일본과 중국 변방의 티베트나 몽골의 젊은 학자들과 대회 기간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만났고, 진지하게 경청했다. 젊었을 때 그가 어땠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온유하고 겸손했으며, 최선을 다해 젊은 학자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때 그의 병은 이미 깊었고 그렇기에 보호자 겸 제자 부부를 동반한 터였다. 한국 방문을 마친 지 3개월 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노학자의 평안한 모습이 더욱 깊이 각인됐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빛나는 사회학 이론보다 그의 학자적 면모가 더 오래 남을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된 한 현상을 보면서, 부르디외가 만들어낸 상징자본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며 그와의 만남을 새삼 되새겨본다. 꼭 돈으로 계산되지는 않아도 상징적으로 자본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인정되는 어떤 것이라고 상징자본의 뜻을 폭넓게 이해하면서 말이다. 상징자본은 직업과 영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현재 삶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한 인간이 성숙해 가면서 비평적 의식이 발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기껏해야 네 살이 된 아들이 어눌한 말끝마다 “나”를 부르짖을 때도 놀랐는데, 커가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비평의식으로 무장해서 어른 주도의 집안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비평의 날을 들이댔을 때, 나는 기꺼이 성인이 된 아이의 새로운 기준으로 집안 모습을 모조리 바꾸었던 것이 기억난다. 일일이 아들의 의견을 묻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가 바야흐로 성인이 됐기에 대견하게 여겼다.

무언가 이상적인 기준이 보일 때, 현재 삶의 양상은 비평 거리가 될 수 있다. 더 나은 변화를 위해 비평이 쓰일 때 그것만큼 쇄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기준이 있기에 비평에는 대안 제시가 함께 가는 것이다. 비평적 말 속에서 똑 부러지게 대안 제시가 되는지 아닌지는 수사학적인 문제다. 비평 속에 기준이 들어 있으면 그것 자체가 대안이다. 그래서 비평이 가치 판단을 괄호 안에 넣고 이뤄질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비평과 비교해서 살펴볼 때 비판·비난·불평은 같은 수준에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기준이 없지는 않지만, 공적인 것보다는 사적인 것, 보편적 의미나 가치에 기준을 두기보다는 개인적인 입장이나 취향과 관련돼 있기에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 일관성이 없는 것도 한 특징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동기도 불순하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시도 때도 없이 분출하는 불평·비난·비판을 사람들은 잘 참을 뿐만 아니라, 은근히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저 사람은 무언가 상황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서 그러려니 한다. 근거를 따져보기도 전에, 누군가 의견 표출을 한다고 보고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긴다. 이렇게 불만이나 비난, 비판이 하나의 상징자본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무리가 형성될 때면 큰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거나한 술집 담화에서는 물론이고 고매한 세미나에 이르기까지 회중 위에 드높아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일련의 공통점이 관찰된다. 내용을 막론하고 비판이나 비난 혹은 불평 같은 부정적인 수사가 단연 힘을 받는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 불만 섞인 비판을 하면 ‘예리하다’ ‘지적이다’ ‘의식이 있다’ 등의 평가가 주어진다. 이런 평가가 상징자본을 형성하는 근거다. 일단 불만을 드러내고 비난이나 비판으로 대상을 공격해야 기선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어디서 많이 본 억지 논리.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달라질까. 그러면 문화가 성숙해질까. 요새는 감사를 표하면 멍청해 보인다. 지난했던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겸손하게 감사 좀 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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