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민간 경제단체 홀대는 국민경제 自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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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경제의 중대 현안 수두룩한데
민간단체의 공동대응 사라져
일본선 정부-經團連 ‘두 바퀴’

정부의 ‘맏형 전경련’ 패싱 심각
정경유착 是正하고 협력해야
경제 어려워지는 만큼 더 절실

요즘 산업 현장에선 최저임금 인상, 법정 근로시간 단축 등 주요 경제적 이슈가 발생해도 경제 단체들의 움직임이나 목소리가 거의 없다. 예전에는 경제 단체의 맏형이던 전경련을 비롯한 5∼6개 경제단체가 공동 대응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회비 내는 민간 경제 단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특히, 전경련 홀대(忽待)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정경 유착의 고리 역할을 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전경련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겠다. 다만, 억울한 점이 있을 것임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최정예 민간 경제연구기관이라 할 수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존립도 위태로워진 것이다. 소속 박사급 연구원이 하나둘 떠나 이제는 몇 명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큰 손실이다. 본래 전경련과 한경연은 독립된 법인이지만, 출연 기관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전경련 탈퇴는 한경연 탈퇴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다.

전경련은 그동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적극 호응해 일본 게이단렌(經團連·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공동으로 한국 젊은이의 일본 취업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일본 기업 취업으로 연계되는 연수 과정 ‘K-Move스쿨’을 발족해 큰 호응을 얻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중장년 일자리를 찾다’ 주제의 특강을 개최했고,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는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장년 구직자를 대상으로 재취업 전략 교육, 취업 상담·알선 등 다양한 무료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의 통상 압박이 거세지자 해결사를 자처하며 현대자동차, 포스코, 한화 등 재계 관계자로 구성된 투자대표단을 파견했고, 9월에 들어서는 ‘한·벨라루스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했다. 이런 노력에도 정부는 아직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일본 게이단렌도 1990년대 초 ‘정경 유착’의 한 축으로서 비리 구조의 핵심으로 지목된 적이 있다. 게이단렌이 정치헌금을 알선하는 통로가 됐고, 그 반대급부로 재무성(옛 대장성)에 정책 요구를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으며 각종 비리와 스캔들의 온상이었었다. 위기에 직면한 게이단렌은 스스로 정치헌금 알선 관행을 폐지하고, 산하에 사회공헌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우주개발추진회의, 방위생산위원회 같은 24개 상설위원회를 두고 투명하게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개혁했다.

이후 2009년 민주당 정권에서도 일부 의원이 게이단렌을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했었고,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2차 내각 출범 이후에도 한동안 게이단렌과 정부의 관계가 소원했었다. 그러나 아베 정권에서는 상호 우호 관계를 복원했다. 지난 5월 31일 임기를 마친 전임 사카키바라 사다유키(榊原定征) 회장은 틈날 때마다 “게이단렌과 정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고 했다. 그 후임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히타치 회장도 “정치와 경제계의 협력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정부에 직언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에서는 외무·재무·후생노동·국토교통·경제재생·관방장관 등 주요 장관이 취임하면 먼저 게이단렌을 예방한다. 게이단렌이 예뻐서가 아니다. 필요해서다.

아프리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물론 혼자 간다고 반드시 빨리 간다는 보장은 없다. 또, 함께 간다고 반드시 멀리 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길동무와 함께라면 먼 길에 고난을 당할 때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 경제정책이 삐걱거릴 때 바로잡아 줄 수 있는 동반자이자 길동무가 바로 민간 경제 단체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정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과거 전경련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근 60년간 정부의 시책에 호응하고 협조해 온 순수 민간단체를 일부러 외면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전경련의 막강한 해외 네트워크도 유지해야 한다. 이 문제는 한국 경제의 사령탑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풀어야 할 숙제다. 먼 장래 남북 경협(經協)에도 전경련의 역할이 분명 있을 터이다. 지금도 남북 정상회담에 기업인의 동행이 검토되고 있는 모양이다. 전경련이 본연의 순수한 기능을 살리도록 격려하고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